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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씨플랫폼 운영 가이드
지지씨는 회원 여러분의 게시물이 모두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해 줄 거라 믿습니다. 경기문화재단은 여러분이 작성한 게시물을 소중히 다룰 것입니다.
제1조(목적)
본 가이드는 재단법인 경기문화재단의 ‘온라인 아카이브 플랫폼 지지씨(www.ggc.ggcf.kr. 이하 ‘지지씨’)’의 기관회원(이하 ‘회원’)의 정의 및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회원의 생산자료에 관한 기록 저장과 활용에 관한 내용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제2조(정의)
본 가이드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지지씨’는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기관의 생산자료 등록과 확산을 위해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온라인 아카이브 플랫폼입니다.
② ‘회원’이란 소정의 가입 승인 절차를 거쳐 지지씨 글쓰기 계정(ID)을 부여받고, 지지씨에 자료 등록 권한을 부여받은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기관 및 유관기관을 의미합니다.
‘생산자료(=콘텐츠)’란 ‘회원’이 지지씨 플랫폼 상에 게재한 부호, 문자, 음성, 음향, 그림, 사진, 동영상, 링크 등으로 구성된 각종 콘텐츠 자체 또는 파일을 말합니다.
제3조(가이드의 게시와 개정)
① 경기문화재단은 본 가이드의 내용을 ‘회원’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지지씨 플랫폼의 기관회원 등록 안내 페이지에 게시하여, 자유롭게 내려받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② 본 가이드는 경기문화재단의 온라인 플랫폼 운영 정책 및 저작권 등 관련 법규에 따라 개정될 수 있으며, 가이드를 개정, 적용하고자 할 때는 30일 이전에 약관 개정 내용, 사유 등을 '회원'에 전자우편으로 발송, 공지합니다. 단, 법령의 개정 등으로 긴급하게 가이드를 변경할 경우, 효력 발생일 직전에 동일한 방법으로 알려 드립니다.
1. 본 가이드의 개정과 관련하여 이의가 있는 ‘회원’은 탈퇴할 수 있습니다.
2. 경기문화재단의 고지가 있고 난 뒤 효력 발생일까지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을 경우, 개정된 가이드를 승인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제4조(회원자격 및 가입)
① ‘지지씨’의 ‘회원’은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기관과 유관기관으로 합니다. ‘회원’은 글쓰기 계정을 부여받은 후 지지씨에 생산자료를 등록하거나, 게시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② ‘지지씨’의 가입 신청은 지지씨 누리집에서 가능합니다. 회원가입을 원하는 기관은 계정 신청서를 작성, 가입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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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조(회원 탈퇴 및 정지‧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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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회원’은 아이디 및 비밀번호가 도용되거나 제3자가 사용하고 있음을 인지한 경우, 이를 즉시 경기문화재단에 알리고 재단의 안내를 따라야 합니다.
③ 본조 제2항의 상황에 해당하는 ‘회원’이 경기문화재단에 그 사실을 알리지 않거나, 알린 경우라도 경기문화재단의 안내에 따르지 않아 발생한 불이익에 대하여 경기문화재단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제9조(회원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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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분류 | 외부기관 | 경기문화재단 |
|---|---|---|
| 중분류 | 뮤지엄(박물관,미술관)/협회/문화예술공공기관/시군청 담당부서 등 | 본부/기관 |
| 아이디 | 사업부서명/사업명 | 사업부서명/사업명 |
| 글쓴이 노출 | 아이디와 동일(한글) | 아이디와 동일(한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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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
[모종의 발견] ⑤생명을 살리는 그 모든 일을 위하여 - 팔당생협 이양희 이사장
2025 실학박물관 지역활동가 아카이브
들판을 걷다 보면 드넓게 펼쳐진 논밭 한가운데 아름다운 그늘을 드리운 멋진 마을 나무를 만날 때가 있다. 마을 수호신처럼 수백 년 묵은 회화나무일 때도 있지만, 10여년 수령의 젊은 나무일 때도 있다. 어느 쪽이든 길 가는 사람에게 달콤하고 시원하고 편안한 쉼을 준다는 점에서 오직 감사할 따름이다. 이양희 팔당생협 이사장은 그런 사람이다. 조안으로 이주한 지는 14년에 불과하지만, 건강한 삶을 향하는 확고한 철학과 뜨거운 지역사랑과 시원시원한 역량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논밭 가운데 선 아름다운 마을 나무를 보는 듯하다. 이양희 이사장의 간절한 꿈과 신바람나는 행로를 만나보자.
Q. 어떻게 팔당생협의 이사장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팔당생협 이사장 이양희라고 합니다. 우리 조합의 본 이름은 팔당생명살림두레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에요. 2001년 3월에 유기농 생산자 중심으로 시민이 모여서 만든 생협인데, 현재 저는 이사장 3년차로 2025년까지 임기가 예정되어 있어요.
제가 이 동네로 이사 온 것은 2011년이에요. 한 14년 정도 살았네요. 이 동네를 알게 된 것은 조안 씨앗도서관 덕분이에요. 제가 덕소에 살 때인데, 이웃에 젊은 아기 엄마가 그곳을 소개하면서 아주 예쁜 도서관이 생겼는데 거기서 2시간 정도 자원봉사를 할 예정이라고 했어요. 아이가 어린 데 가능하냐고 했더니 친정엄마한테 잠깐 봐달라고 하고, 봉사를 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 무슨 프로그램이 있는지 좀 보자고 했더니, 산야초, 야생화 같은 것을 실제로 산과 들로 다니면서 보고 공부하는 모임이 있더라고요. 나는 그런 데 관심이 많아서 조안에 처음 발을 들였던 거예요. 2009년이나 2010년쯤 되었던 것 같은데, 그 모임을 정말 열심히 했고 나중에는 모임을 이끄는 사람이 되었어요.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어요. 도서관에는 책읽기 모임도 있었는데, 그것을 인문학 책읽기 모임으로 키워가게 되었어요. 그 모임 장을 하면서 도서관 운영에도 참여하였고요. 그러다 2011년에는 관장직을 맡게 되었어요. 당시 조안씨앗도서관은 팔당두레생협에서 위탁 운영을 하고 있었어요. 예전에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 또는 문화사각지대에 아이들을 위해서 경기문화재단이 도서관을 지어주는 지원 사업이 있었어요. 생협에서 지역의 아이들과 주민을 위한 마을도서관을 신청하면서 도서관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것이 조안 씨앗도서관이예요. 공모 지원부터 운영 준비까지 생협에서 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위탁 운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도서관장직을 맡으려면 생협의 조합원이 되어야 했어요. 보통 건강한 먹거리를 찾으려고 생협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서관 운영자로 들어오면서 생협에 가입하게 되었으니 특이한 경우지요. 게다가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10년이 지난 다음에는 생협 이사장까지 하게 되었네요. 저는 그렇게 생협을 통해서 이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답니다. 씨앗도서관 운영을 맡으면서 아예 이곳으로 이사를 할까 하던 차에 아는 분이 조그맣게 집이 났으니까 한 번 와 보라고 해서 정말 얼결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Q. 조안은 어떤 곳인가요?
여기는 정말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고 특별한 곳이에요. 다른 곳에서는 이제 볼 수 없는 모습이 아직도 이어지고 보존되고 있어요.
이곳은 사람들의 이동이 많지 않아요. 왜냐하면 집을 지을 수가 없으니까요. 상당한 규제가 있어서 여기 좋다고 무조건 땅 사서 집 짓고 할 수가 없는 곳이에요. 주택 공급이 제한되어 있으니까 아무리 수요가 많아도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굉장히 적어요. 그래서 거의 80% 정도는 원거주민이라고 할 수 있고 한 20%는 들락날락하는 외지인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원거주민도 6대, 8대 대대로 살고 있는 집들이 많고 집성촌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요. 마을 동제가 있고 산신제 지내는 곳도 아직 남아있고요. 생태적인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마을에는 400여년 역사에서 만들어진 무형의 문화유산도 굉장해요. 마을의 안녕과 그 안에 깃든 삶을 평안하게 하고픈 사람들의 염원이 마을 곳곳에 이야기와 문화로 남아있죠.
양수리와 조안은 북한강변을 두고 마주 보고 있어서 같은 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아요. 어차피 양쪽이 다 수도권의 82% 취수원이기 때문에 여기는 같은 최상위법이 적용되고 있어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규제의 차이가 있어요. 밤이면 양수리는 불빛이 번쩍번쩍하죠. 산이 점점 집이 되어 가고 있어요. 지금 양수리 원형이랄까? 자연이나 마을의 원형이 많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조안면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듣기로 그 차이는 면 단위의 위상에 있었대요. 1970년대 양수리가 있는 양서면은 독립된 면사무소였지만, 조안면은 와부읍의 출장소였어요. 양서면은 자체적으로 도시계획을 세울 수 있었지만 조안면은 자체적인 도시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자격이 없었던 거죠. 거기에 원인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Q. 팔당생협은 어떤 일을 하는가요?

조안면 진중리에 팔당생협 본점이 있어요. 현재 팔당생협은 7개 매장이 있고 양평, 하남, 구리, 남양주 등에 퍼져 있어요. 남양주 조안면은 25년 전에 팔당생협이 처음 생긴 곳이에요. 그 배경이 있어요. 이곳이 취수원이고 상수원 보호구역이 되었는데 여기는 70∼80%는 농업지역이에요. 예전에는 관행농으로 농약, 비료 같은 것을 제한 없이 사용했는데, 그것은 농부들이 그러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1970∼1980년대 농업정책으로 정부가 엄청난 양을 쏟아부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것이 상수원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런 것을 모두 못하게 된 거죠. 그린벨트로 지정되고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이는 등 여러 가지 규제가 시행돼요. 규제의 시행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장치가 필요하지만 아무 대책도 없이, 그냥 무조건 못하게만 한 거예요.
그래서 이 지역의 농민들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뭘 해서 먹고 살라는 거냐? 농사를 지으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오죽하면 당시 어떤 농부님은 한강물에다 그 농약을 다 타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말을 할 정도였어요.
그러던 중 1974년 팔당댐이 만들어지면서 조안면과 광주, 하남 쪽 강변 마을의 상당 부분이수몰 되었어요. 이 지역이 수도권 농업이 집중되어 있던 곳이었는데, 이때 두물머리와 조안면 농부님들을 중심으로 유기농이 시작되었던 거예요. 유기농을 시작하신 분들은 두물머리 정 씨 형제분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처음에는 다만 두 분의 개인적인 농법이었을 뿐이고 전혀 보편화된 농사는 아니었지만, 1995년도에 이 지역 생산자분들이 우리가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짓는 걸로 농사를 전환하자고 결의하고 두물머리에 정상묵 님을 회장으로 친환경 유기농법을 채택하는 유기농업운동본부를 설립하셨던 거예요. 팔당호 일대의 80∼100여 가구가 여기에 가입을 하였고 당시 농산물 매출액이 60억이 넘을 정도로 생산량이 엄청났다고 해요. 이는 전국적으로도 가장 많은 생산량이었다고도 하고요. 한참 귀농, 귀촌, 도시농업 등이 제안되던 시기여서 농산물을 출하하기가 무서울 정도로 다 팔렸다고 해요.
그러면서 ‘우리의 생활도 친환경 유기농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활 철학이 제기되었고 한편으로는 판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었어요. 1989년 한살림 선언 이후로 지역마다 생협들이 조직되어서 생산자들과 결합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우리 지역에서도 생협을 하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모였고 2001년도에 팔당상수원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만들어질 수 있었어요. 영농법인과 생협은 관련 법이 다르기 때문에 2005년에는 팔당유기농운동본부(팔당영농), 팔당생명살림생활협동조합(팔당생협)으로 분리되었고요. 그래도 어쨌든 뿌리는 같아요. 20여 년 영농과 생협은 친형제답게 서로 돕고 또 어떨 때는 다투기도 하면서 이어져 왔어요.
당시에는 조합원 대부분이 30∼40대라서 아이들이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생산자들과 대보름, 단오, 추수, 겨울철 놀이, 모내기, 벼베기 등 다양한 절기 문화 행사 등을 개최했어요. 이런 행사는 이 지역 아이들에게도 적절했지만 도시 조합원들에게도 꼭 필요한 행사여서 지역 생산자 조합원들과 굉장히 큰 규모로 열었어요. 그 외에도 생협은 조합원들의 필요에 의해서, 또 생활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여러 모임들이 있어요. 동아리, 다양한 조합원 교육, 학교나 어린이 식생활 교육 같은 것도 지원하면서 끊임없이 지역에 기반을 둔 활동이 20여 년 지속되어 온 거죠. 2004년에는 여기에서 풀씨방과후학교가 만들어졌고 이것이 2007년에는 풀씨지역아동센터가 돼요. 그리고 어린이들이 성장하고 청소년들의 활동이 필요해지면서 2013년에는 풀꽃청소년센터가 개소했고요.
하지만 일상적으로 이 지역 주민들은 특별히 문화생활을 할 만한 데도 없고 아이들을 마음 편히 맡길 곳도 없었어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도서관이에요. 조안씨앗도서관이 개관한 것은 2008년이에요. 이후 씨앗도서관이 집중적으로 지역 주민의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된 거죠. 제가 3년간 관장을 했는데, 정말 매달, 매주 엄청나게 많은 프로그램을 했어요. 참여하는 아이들의 돌봄도 되었지요.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도서관에 와서 놀고 공부할 수 있게 맡아주니까 아이들은 학습지원도 받을 수 있고 학부모들은 볼일 보고 저녁에 데려갈 수 있었고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원거주민과 이주민을 이어주는 역할도 일부 수행할 수 있었어요. 이 지역의 원거주민과 이주민의 구분은 생각보다 분명해요. 우선 수적으로 원거주민과 이주민이 크게 차이가 나고 오랫동안 이어져 온 마을에 이주민이 들어가는 것이라서 그 사이가 금방 돈독해질 수가 없죠. 말하자면 이주민들의 변방성이 꽤 오래 지속된다고 할 수 있어요. 원거주민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있고 이주민들이 얼마나 살다 갈지 알 수 없는 이들이고 그러니 ‘얘들은 아직 우리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지역 안에서 일어나는 의사결정 구조에 들어가 있는 외지인이 별로 없고 또 그러니까 필요한 정보도 제때 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어떤 건물이 생긴다고 해도 그게 뭔지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남들이 다 이용한 후에야 알게 되거나 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이곳이 좋다고 이사 온 분들이 어디 비빌 언덕이 없잖아요. 그런데 도서관이 바로 그런 언덕이 되어준 것이에요. 자연스레 서로 알게 되고 이웃으로 이어주게 되고요.
하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그저 와부도서관 산하의 부속도서관 격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예전의 어린이도서관, 열린도서관의 분위기는 사라졌지요. 하지만 우리 풀씨방과후학교는 이제 성장해서 지역아동센터가 되었고 거기에서 우리 식재료로 아이들을 먹이고 키우고 있어요. 그것은 정말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무엇보다 매장이 있는 구리, 하남, 화도, 덕소, 진중 지역에 마을위원회가 다 있어요. 여기에서 조합원들의 활동을 지원하니까 조합원 소모임, 동아리 같은 것이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어요. 무엇을 하든 3명 이상만 모이면 간식비 3만원을 지원하고 모임 리더에게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해요.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요. 우리는 그 모임을 씨앗이라고 하는데, 그 씨앗이 다 지역주민인 거죠. 말하자면 생협의 역할이 다만 친환경 생활재 공급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이슈나 다른 단체 등과 연대하고 결합하면서 조합원 개인의 성장과 발전, 활동에도 함께 관심을 가지고 또 거기에서 새로운 시도가 가능해지죠.
예를 들어 구리마을위원회에는 음악을 하는 조합원이 있어요. 그분이 작은 콘서트, 음악회를 열면 그건 모든 마을위원회에서 알게 되지요. 참석을 하는 분도 있고 못하는 분도 있지만 만 원, 이만원 콘서트에 후원을 할 수 있어요. 그러면 공연하면서 몇 십만 원 모이잖아요. 이것을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비용으로 후원하는 거예요. 구리마을위원회는 1년에 한 번 바자회도 여는데 수익금으로 물품 후원을 해요. 작년에는 수익금으로 구리지역청소년센터에 면생리대와 현미국수 같이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지원했어요.
이렇게 조합원 조직활동으로 해마다 매출의 1%에 해당하는 예산을 책정해서 운영하고 있는데생협의 상황이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이렇게 하는 곳이 많지 않아요. 팔당생협은 사회적 기업이고 안전한 먹거리 외에도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만 소비하자는 가치를 지향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소비하는 물품이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우리가 알고 소비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생협에는 먹거리에 한정되지 않고 손세정제나 양말까지 몽땅 다 있어요. 웬만한 마트는 이용하지 않아도 생활에 필요한 것을 모두 구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일반 마트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죠. 우선 생협은 돈이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지 않는 비영리 법인이고 생산자와 연결된 책임소비를 하며 공정무역과 환경을 보호하고 지키는 소비를 지향하는 조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팔당생협은 생명살림의 철학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의 건강과 나의 생활을 안전하게 지속할 수 있으려면 지구 생명이 안전하게 지속되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기본인 거죠. 이런 시민교육을 엄청 많이 하고 있어요.
Q. 마을위원회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제가 2019년부터 진중점이 있는 이 지역의 마을위원장을 했어요. 사실 언제부턴가 조안에서는 생협이 미운털이 박혀 있었다고 할 수 있었어요. 아마도 4대강 시기인 것 같은데, 그때는 제가 이 지역에 살고 있지 않던 때예요. 여기 분들은 4대강을 한다니까 이 지역이 개발된다고 생각하셨대요. 오랫동안 규제에 묶여 있던 상태였으니까 4대강을 찬성한다는 분위기도 있었나 봐요. 그렇지만 이와 달리 생협은 4대강에 반대하면서 환경을 지켜야 한다, 농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했죠. 3년 8개월 동안 4대강 싸움이 이어졌는데, 생협조합원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연대해서 엄청 애를 썼어요. 씨앗도서관에서 모이기도 했고요. 그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제가 도서관운영을 할 때에도 뭐랄까? 마을에 도움을 청해도 오지도 않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동네 사람이 몇이냐? 아무도 없다. 그럴 바엔 거기 문 닫고 체육관으로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니까, 저도 우호적이지 않다고 느꼈죠. 그런 말의 진의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마을과 생협의 관계가 끊어져 있었다는 거예요.
제가 팔당마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이것을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경기도 마을종합지원사업을 신청해서 선정되었어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동안 1억 2천 정도를 연속지원 받는 사업이었어요. 조안면을 대상으로 그 예산을 쏟아 부었어요. 그 결과물이 <조안신문>, <소풍> 책자 등이에요. 결과보고서도 물론 나왔고요.
<소풍>은 여기 주민들과 20주 동안 조안을 샅샅이 걸어 다닌 기록이에요. 그렇게 해서 지도도 만들었고요. 코로나 때문에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표지판 있는 곳은 다 걸어본 것이라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었고 참가자들의 만족도도 무척 높았어요. 조안면이 강을 따라 길게 능내리, 조안리, 진중리, 송촌리, 시우리, 삼봉리, 이렇게 쭉 이어져 있기 때문에 자기 마을 빼고는 주민들도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많았어요. 삼봉리 사는 분들은 능내리를 잘 몰라요. 그런데 이 활동으로 구석구석 다녀보고 ‘어머! 이런 곳이 있었어요?’ 놀라고 ‘조안이 진짜 너무 좋다. 정말 아름답다.’ 새삼 감동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도 발견하면서 진짜 ‘소풍’ 나온 듯 너무 좋아한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리고 원거주민, 이주민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여기는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지역이기 때문에 ‘신문’이라는 오래된 매체에 대한 추억과 기대가 있어서 종이신문을 만들었던 거예요. 송촌초등학교, 조안초등학교, 연세중학교 어린이, 청소년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를 실은 어린이 지면도 있고, 주민들의 이슈, 공동체의 의견도 다양하게 들어있어요. 전부 지역 주민이 참여해서 만든 거예요.
그러면서 2021년에는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에 참여해서 재료도 지원하고 비닐봉지로 쓰던 포장을 다회용 용기로 싹 다 바꿔드리기도 하고요. 이런 사업으로 전하고 싶었던 것은 ‘감사의 마음’이었어요. 이 마을의 주민으로서 마을이 잘 되길 바라고, 이 마을에서 잘 살고 싶고, 이 마을을 여태까지 만들어오고 지켜온 것에 감사한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어요. 이 사업을 통해서 주민들과 관계를 많이 맺었고 오해도 많이 풀게 되었다고 봅니다. 생협의 이미지가 회복되어가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어요. 지금은 전근 가셨지만 어떤 면장님은 홍보물을 갖다 놓으라고 해주시고 무슨 행사가 있으면 부르기도 해주시고요. 취재하러 다니면서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도 많이 만났는데, 이제는 환대해 주시고 또 방이 나왔으니 소개 좀 해달라는 말씀도 해주시고 즐겁고 재미난 일이 생기게 되었어요. 또 취약계층 바우처로 건강한 먹거리를 조안면 주민들이 가져갈 수 있게 하기도 하고 초등학교나 지역 체육대회, 여러 행사 등에 소소하게 후원을 하기도 하고요. 2024년에는 면민체육대회에서 내빈으로 소개되어서 인사를 드리기도 했어요. 이런저런 지역 행사에 함께 협력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고 있어요.
Q. 앞으로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세요?
주민들하고 자원 순환에 관한 일을 해보고 싶어요. 여기 마을들은 아직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이 도시하고는 다르게 체계적이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아요. 그리고 여기는 농가가 워낙 많아서 비닐도 많이 나오고요. 이런 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자원 순환을 공부하거나, 하나의 모형을 모델로 삼아서 시범적으로 경과를 보고 싶어요.
그리고 여기 할머니들의 구술집을 조그맣게라도 내고 싶어요. 그리고 할머니들만 아는 ‘나만의 비법 요리’ 같은 것도 채집하고 ‘어떤 할머니의 날’을 만들어서 그 할머니의 레시피 중에서 제일 먹고 싶은 거 하나 만들어 먹고, 그런 거요. 생협에서 우리가 모셔서 하면 조합원들도 올 수 있을 거예요. 식생활 교육을 많이 하고 있는데, 채식 또는 식물자연식, 제철 지역요리 등이에요. 기후와 환경을 생각하는 저탄소 밥상에 대한 실천이죠. 생협에서 기후 밥상으로 채식 레시피를 수집하고 개발하고 하는데, 할머니들의 레시피를 적극적으로 방출하면서 요리를 만들어서 같이 먹을 수 있으면 어떨까요. 지역에서 그런 생태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이벤트도 많이 일어나면 좋겠어요.
그리고 할아버지들 구술집을 만든 적이 있어요. 90대 노인 어르신들 찾아다니면서 그분들이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 마을 모습에 대한 구술을 받은 거에요. 이런 이야기들을 더 듣고 수집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어요. 할아버지들이 보통 이장을 하셨으니까 마을에 대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갖고 계시거든요. 할머니들은 좀 더 관계 중심으로 기억하고 계시고요. 그래서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의 기억이 차이가 있어요. 재밌죠?
다시 해보고 싶은 일이라면 ‘신문’이에요. 일단 저에게 정말 의미가 있었어요. 신문을 통해서 발굴된 사람들도 있었고, 학생 기자 15명, 주민 기자 7~8명 다 자발적으로 10원 한 장 안 받고 취재하고, 기사 쓰고, 교정교열 다 보고, 편집해서 신문을 냈던 거예요. 그리고는 우리가 다 발로 뛰어서 집집마다 배달하고요. 그러니까 품도 많이 들고 고생도 많이 하고 힘들었지만 의미도 굉장히 컸어요. 남양주에서 이런 지역 신문 사례가 별로 없대요. 처음에는 신문 검수를 옥천신문의 황민호 대표에게 받았는데 황 대표님 놀라시더라고요. 수준이 정말 높다고요. 사업 끝난 다음에도 계속 신문을 내는 길을 찾아보고 있어요. 이장단협의회 대표님도 얘기를 더 해보자고 하셨고요.
Q. 실학박물관은 어떠해야 할까요?

초등학교 4학년 사회과 단원에 ‘마을’이 있어요. 아이들이 마을을 조사하는 거예요. 몇 년 전송촌초교에서 마을탐방을 아이들과 같이해 줄 수 있느냐고 문의가 왔어요. 그러면 아이들을 데리고 실학박물관에 가죠. 같이 돌면서 설명도 해주고 이야기도 해주죠. 그리고 아이들이 앉아서 뭘 봤나, 뭐가 좋았나를 쓰는 활동지가 있더라고요. 우리는 실학박물관을 그런 용도로 이용하는 게 다예요. ‘자산어보’전 같은 것도 한 6개월 전시하면 그만이고 상설 전시는 늘 그 모습인 거고요. 그래서 역동성이 없다는 느낌이에요. 그러다보니 자주 가지 않게 되고 그러니까 잘 알지 못하고요.
마을 활동을 하면서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좋은 자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실학박물관과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런 여지나 연결이 가능할까? 그런 생각이 들죠. 벽이 좀 높고 견고한 느낌이에요. 실학박물관에서 펼쳐놓은 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관람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기반으로 뭔가 실제 행위도 하고 그런 것이 상시적으로 있으면 더 좋겠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나의 행위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 거기에서 역동이 발생하잖아요. 관점과 방향을 확 열었으면 좋겠어요.
이 지역은 다산 선생님이 태어나신 곳이잖아요. 유배지와 비교하기 어려운 상징성이 있어요. 태어나고, 여기서 돌아가시고, 여기에 묻히셔서 묘소도 있고요. 다산 선생님이 어렸을 때 뛰어올랐다는 철문봉이라든지, 마재성지는 성가정 성지라고 셋째 형인 정약종 가족 5명이 순교한 곳이고요. 이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다산의 일생과 마을의 운명과 그 정서, 이후의 영향,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프로그래밍해서 주민 속에 깊숙이 들어왔으면 해요. 저는 공간의 이미지가 그 공간에 흐르는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실학박물관의 에너지가 일방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상호 교류하는 에너지였으면 좋겠어요. 실학이란 것이 예전 학문이 아니라 지금도 실생활에서 필요를 충족하고 문제 해결력을 높여주는 학문이라는, 담장을 넘은 실학을 느끼고 싶죠.
팔당생명살림두레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이양희 이사장은 2024년부터 진행된 실학박물관 지역 연계 확산 사업에 함께 하며 인터뷰, 라운드테이블 등에서 활발하게 박물관이 지역과 함께 나아갈 방향을 제안하고 있으며 현재 실학박물관과 함께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운영 준비 중이다.
2025 실학박물관 지역활동가 아카이브 <모종의 발견>
조선 후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하던 학자들을 실학자라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활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모종의 발견>은 지역 곳곳에서 싹트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찾아 숨겨진 가능성과 가치를 세상에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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