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씨 회원 가입 안내
경기도내에 위치한 국·공·사립 문화예술기관,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등 도내의 문화예술 소식과 정보를 발행해주실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지지씨 회원은 경기도 문화예술 콘텐츠를 지지씨플랫폼에 직접 올려 도민들과 더욱 가까이 소통할 수 있습니다.
기관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사업별 보도자료, 발간도서 등 온라인 게재가 가능하다면 그 어떠한 콘텐츠도 가능합니다.
지지씨를 통해 더 많은 도민에게 문화예술 사업과 콘텐츠를 홍보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세요.
지지씨 회원으로 제휴를 희망하는 기관은 해당 신청서를 작성하여 메일로 제출바랍니다.
지지씨 기관 회원 혜택
신청서 작성 및 제출안내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지지씨는
기관 회원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지지씨플랫폼 운영 가이드
지지씨는 회원 여러분의 게시물이 모두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해 줄 거라 믿습니다. 경기문화재단은 여러분이 작성한 게시물을 소중히 다룰 것입니다.
제1조(목적)
본 가이드는 재단법인 경기문화재단의 ‘온라인 아카이브 플랫폼 지지씨(www.ggc.ggcf.kr. 이하 ‘지지씨’)’의 기관회원(이하 ‘회원’)의 정의 및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회원의 생산자료에 관한 기록 저장과 활용에 관한 내용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제2조(정의)
본 가이드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지지씨’는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기관의 생산자료 등록과 확산을 위해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온라인 아카이브 플랫폼입니다.
② ‘회원’이란 소정의 가입 승인 절차를 거쳐 지지씨 글쓰기 계정(ID)을 부여받고, 지지씨에 자료 등록 권한을 부여받은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기관 및 유관기관을 의미합니다.
‘생산자료(=콘텐츠)’란 ‘회원’이 지지씨 플랫폼 상에 게재한 부호, 문자, 음성, 음향, 그림, 사진, 동영상, 링크 등으로 구성된 각종 콘텐츠 자체 또는 파일을 말합니다.
제3조(가이드의 게시와 개정)
① 경기문화재단은 본 가이드의 내용을 ‘회원’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지지씨 플랫폼의 기관회원 등록 안내 페이지에 게시하여, 자유롭게 내려받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② 본 가이드는 경기문화재단의 온라인 플랫폼 운영 정책 및 저작권 등 관련 법규에 따라 개정될 수 있으며, 가이드를 개정, 적용하고자 할 때는 30일 이전에 약관 개정 내용, 사유 등을 '회원'에 전자우편으로 발송, 공지합니다. 단, 법령의 개정 등으로 긴급하게 가이드를 변경할 경우, 효력 발생일 직전에 동일한 방법으로 알려 드립니다.
1. 본 가이드의 개정과 관련하여 이의가 있는 ‘회원’은 탈퇴할 수 있습니다.
2. 경기문화재단의 고지가 있고 난 뒤 효력 발생일까지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을 경우, 개정된 가이드를 승인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제4조(회원자격 및 가입)
① ‘지지씨’의 ‘회원’은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기관과 유관기관으로 합니다. ‘회원’은 글쓰기 계정을 부여받은 후 지지씨에 생산자료를 등록하거나, 게시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② ‘지지씨’의 가입 신청은 지지씨 누리집에서 가능합니다. 회원가입을 원하는 기관은 계정 신청서를 작성, 가입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1. 회원가입을 원하는 기관은 지지씨에서 내려받기 한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 지지씨 계정 신청서’를 지지씨 공식 전자메일(ggc@ggcf.kr)로 제출, 승인 요청을 합니다.
2. 한 기관에 발급되는 계정은 부서별/사업별로 복수 발급이 가능합니다. 단, 사용자 편의 등을위해 기관 계정 관리자 1인이 복수 계정의 발급을 신청한 경우, 승인 불가합니다.
3. ‘회원’ 계정은 신청인이 속한 기관명/부서명/사업명 등의 한글로 부여됩니다.
4. ‘회원’은 계정 발급 후 최초 로그인 시 비밀번호를 변경합니다.
5. 계정의 비밀번호는 가입 승인된 계정과 일치되는 ‘회원’임을 확인하고, 비밀 보호 등을 위해 ‘회원’이 정한 문자 또는 숫자의 조합을 의미합니다.
③ ‘지지씨’ 가입 신청 방법은 내부 방침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며, 가입 신청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지지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④ 경기문화재단은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신청에 대하여 승인 불허 혹은 사후에 계정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1. 과거 회원자격 상실 회원. 단, 경기문화재단과 회원 재가입 사전 협의, 승인받은 경우는 예외로 함
2. 정보의 허위 기재, 저작권 등 관련 법률을 위반한 저작물 게시 등 제반 규정을 위반한 경우
⑤ ‘회원’은 회원자격 및 지지씨에서 제공하는 혜택 등을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대여할 수 없습니다.
⑥ ‘지지씨’는 계정과 생산자료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별표〕에 따라 ‘회원’을 구분합니다. 회원 구분에 따른 이용상의 차이는 없습니다.
제5조(회원 정보의 변경)
① ‘회원’은 언제든지 가입정보의 수정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기관명, 부서명 등의 변경에 따른 계정 변경도 가능합니다. 단, 계정 변경시에는 계정(신청/변경)신청서를 다시 작성, 제출해야 합니다.
② ‘회원’은 계정 신청 시 기재한 사항이 변경되었을 경우 전자우편 등 기타 방법으로 재단에 대하여 그 변경사항을 알려야 합니다.
③ 제2항의 변경사항을 알리지 않아 발생한 불이익에 대하여 재단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제6조(회원 탈퇴 및 정지‧상실)
① ‘회원’은 지지씨 공식 전자메일, 전화 및 경기문화재단이 정하는 방법으로 탈퇴를 요청할 수 있으며 경기문화재단은 ‘회원’의 요청에 따라 조속히 탈퇴에 필요한 제반 절차를 수행합니다.
② ‘회원’이 탈퇴할 경우, 해당 ‘회원’의 계정 및 가입 시 작성, 제출한 개인정보는 삭제되지만, 탈퇴 이후에도 등록자료는 ‘지지씨’에서 검색, 서비스됩니다.
③ ‘회원’ 탈퇴 후에도 재가입이 가능하며, 탈퇴 전과 동일한 아이디를 부여합니다.
제7조(생산자료의 게시와 활용)
① ‘회원’은 글쓰기페이지(www,ggc.ggcf.kr/ggcplay/login)를 통해 계정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 ‘지지씨’에 접속합니다.
② ‘회원’은 ‘지지씨’ 에디터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해당 기관의 문화예술 관련 자료를 게시 및 수정, 삭제할 수 있습니다. 단, 사업의 일몰, 기간의 종료, 추진부서의 변경 등의 사유로 삭제는 불가합니다.
③ ‘회원’은 ‘지지씨’에 게시한 해당기관의 자료를 뉴스레터, SNS 등 온라인 매체로 확산,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단, 타기관의 자료를 사용하는 경우 사전 사용 협의 및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④ ‘회원’의 게시물은 도민 문화향수 확산을 위해 출처를 밝히고 뉴스레터나 SNS 등의 채널에 가공 없이 활용될 수 있습니다.
제8조(회원의 아이디 및 비밀번호의 관리에 대한 의무)
① ‘회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에 관한 관리책임은 ‘회원’에게 있으며,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습니다.
② ‘회원’은 아이디 및 비밀번호가 도용되거나 제3자가 사용하고 있음을 인지한 경우, 이를 즉시 경기문화재단에 알리고 재단의 안내를 따라야 합니다.
③ 본조 제2항의 상황에 해당하는 ‘회원’이 경기문화재단에 그 사실을 알리지 않거나, 알린 경우라도 경기문화재단의 안내에 따르지 않아 발생한 불이익에 대하여 경기문화재단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제9조(회원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의무)
① 경기문화재단은 지지씨 계정 신청시 수집하는 개인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계정 관리자 이름 2. 사무실 연락처 3. 담당자 전자메일
② ‘회원’의 개인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 및 경기문화재단 개인정보처리방침에 따라 보호됩니다.
③ 경기문화재단 개인정보처리방침은 ‘지지씨’ 누리집 하단에 공개하며, 개정시 그 내용을 ‘회원’의 전자메일로 알립니다.
제10조(사용자 권리 보호)
① ‘회원’의 게시물이 저작권 등에 위배될 경우 경기문화재단은 사전 협의나 통보 없이 바로 삭제조치합니다. 이와 관련한 분쟁은 「저작권법」 및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등을 따릅니다.
② 경기문화재단은 ‘회원’의 게시물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이거나, 관련 법령을 위배하는 등지지씨의 운영 정책에 부합되지 않는 경우, ‘회원’과 협의 없이 삭제할 수 있습니다.
‘지지씨’의 게시물로 기관의 명예훼손 등 권리침해를 당하셨다면, 경기문화재단 지지씨멤버스의 고객상담(VOC)을 통해 민원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의 정책 규정을 따라 처리될 것입니다.
본 약관은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의 승인을 얻은 날부터 시행됩니다.
| 대분류 | 외부기관 | 경기문화재단 |
|---|---|---|
| 중분류 | 뮤지엄(박물관,미술관)/협회/문화예술공공기관/시군청 담당부서 등 | 본부/기관 |
| 아이디 | 사업부서명/사업명 | 사업부서명/사업명 |
| 글쓴이 노출 | 아이디와 동일(한글) | 아이디와 동일(한글) |
콘텐츠 등록/수정 요청
01. 콘텐츠 등록 및 수정 요청서 양식 다운로드
콘텐츠 직접 등록 및 수정이 어려우실 경우, 해당 요청서 양식을 다운로드 하신 후 작성하여
지지씨 관리자에게 등록·수정을 요청해주세요.
02. 콘텐츠 등록 및 수정 요청 안내
상단에서 다운로드하신 해당 요청서 양식 파일을 지지씨 관리자 이메일로 제출해 주세요.
실학박물관
[모종의 발견] ⑦ 모아들이고 모여드는 식료품점, <다람쥐> 조호연·조혜원
2025 실학박물관 지역활동가 아카이브
한 사람은 농사를 지어 재료를 모아들이고 한 사람은 재료를 다루어 잼이며 소스며 과자를 만든다. 겉만 보면 조용하여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안에서는 수많은 맛난 것들이 병이며 통에서 향기로 재잘대고 있다. 가게라지만 잘 팔겠다고 보기 좋게 진열된 매대는 없다. 유럽 어느 시골에서 부지런한 주인이 직접 만든 것만 팔고 있는 자그만 식품 가게를 보는 듯하다. 무엇을 파는지 알아야 살 수 있는 동화 속의 과자 가게 같은 양평 부용리의 식품 가게 ‘다람쥐’를 찾아보았다.

Q. 우선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혜원 : 저는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에 거주하고 있고 여기 ‘다람쥐’라는 식료품점에서 여러 가지 가공식품을 만들고 우리밀 과자도 만드는 조혜원이라고 합니다.
호연 : 저도 같은 곳에 살고요, 부용리에서 친구들과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농사지은 작물을 ‘다람쥐’에서 식품 재료로 쓰고 있습니다.

Q. 어떻게 양평 부용리에서 살게 되셨나요?
호연 : 사연이 좀 길어요. 2007년 초반까지 저는 홍대에서 음악활동을 하는 인디뮤지션이면서 사진 작업을 하는 작가였어요. 제 작업하느라 주변에는 관심이 없었죠. 그런데 2007년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었다고 축하를 위한 무슨 락페스티벌이 열리게 되었어요. 정부 예산으로 치르는 거라 유명한 가수들이 섭외된 거였어요. 여기에 저항하는 의미로 ‘살살페스티벌’이란 행사를 친구들이 기획했는데, 그때 저도 여기에 초대를 받았어요. 초대는 받았지만, 새만금 방조제가 왜 문제인지, 거기를 간척한 것이 무슨 문제인지도 몰랐어요. 가보고서야 내용을 알게 되었고 ‘살살페스티벌’이 그에 저항하기 위한 행동이란 것을 알게 되었죠. 그 페스티벌은 ‘에코토피아’라는 생태 캠프를 연결해서 개최된 거였거든요. 그래서 며칠 동안 캠프를 열어서 환경문제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살살페스티벌도 준비하는 상황이었던 거에요. 그걸 전혀 모르고 갔다가 그런 활동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처음 접한 거죠. 놀라웠어요. 그런 사회적 문제를 이런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다루면서 저항을 할 수도 있구나.
이후 2009년에 용산 4구역 남일당에서 사고가 났고 거기에도 새만금에서 만난 친구들이 있었어요. 라디오를 개국해서 용산의 상황을 계속 사람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했어요. 거기에도 초대되어서 그 같은 상황을 접하게 되었고 거기에 연대하면서 음악활동을 했어요. 그리고 또 이어서 2010년 여름에는 두물머리에서 4대강 투쟁과도 만나게 되었어요. 에코토피아를 열었던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곳으로 왔어요. 여기에도 새만금 때처럼 에코토피아를 열어야겠다고 했고 그 소식을 듣고 저도 이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그 친구들은 좀 특별해요. 그냥 운동하는 활동가라고 하기에는 좀 달라요. 그 친구들은 삶과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자신들이 무엇이라고 규정짓지 않았고 흩어졌다가 모이고 모였다가 흩어지고 하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두물머리에 살면서 농사를 지으며 4대강 개발을 반대하고 강을 지키기로 한 거예요. ‘농사가 투쟁이다’를 슬로건으로 발전위원회가 아닌 ‘밭전위원회’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거기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어요. 농사짓는 행위 자체를 저항하는 방식으로 만든 거죠. 시민들이 빈 농지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다양한 그룹의 시민들이 모였어요. 개개인으로 온 사람도 있고 대학 동아리가 와서 밭 일부를 농사짓기도 하고 서울의 어떤 카페에서 자원 활동하시는 분이 모여서 농사짓는 공간도 있었어요. 천주교에서 결합해서 매일매일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다양한 시민 밭들이 생기면서 불복종 텃밭이 생긴 거죠. 밭전위원회는 농부들이 떠난 밭에 농사를 지어서 수확을 하고 거기에 ‘불복 종 감자’, ‘4대강 포기 배추’ 같은 재미난 이름을 붙여 판매하고 운동 기금을 마련했어요.
에코토피아부터 함께하던 친구들은 농부들하고 함께 투쟁하면서도 시민들의 연대를 끌어내고 이 시민들이 중심에 서도록 판을 짰던 거예요. 그리고 두물머리 공간에 농부들이 디자인한 계획이 있었어요. 농부들의 합의에 퍼머컬처형 생태학습장을 두고 계속 민간 거버넌스가 운영한다는 조건이 있었거든요. 덕분에 기존 두물머리 조감도, 사업계획은 백지화되었고요.
그런데 여기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해서 2012년 여름에 합의가 되었고 투쟁은 거기서 끝났는데, 다른 투쟁 현장 같은 경우에는 그럴 때, 거의 해산이잖아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죠. 그런데 여기는 한 2년간 공동 경작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투쟁을 마치고 각자 자기 삶을 살면 되는데, 남아서 계속 공동 농사를 짓는 이들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투쟁 이후에도 계속 연대했던 사람들과 공동 농사를 짓게 된 거예요. 그러면 연대했던 사람들이 그 농사 소식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판이 계속 이어진 거죠. 우리도 그래서 투쟁 이후에도 관계를 이어가게 된 거고요.
그때 저는 성북동에 살고 있었고 혜원 씨는 이웃이었어요. 혜원 씨에게 에코토피아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어요.
혜원 : 이후에도 일손이 필요한 상황이라 저희도 계속 오게 되었어요. 농사터를 옮겼을 때, 거기서 새로 구성해야 되는 그 농막이나 생태 화장실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럴 때 같이 했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래서 많은 친구들이 왔어요. 우리도 힘을 보탰고요. 2012년에 투쟁은 끝났는데, 2013, 2014년, 2015년 매년 쭉 오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여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죠.
호연 : 그 무렵에 저는 마포, 도봉구 등에서 공공미술 분야에서 한 10년 간 집중해서 활동하고 있으면서 이곳을 왔다갔다 했었어요.
혜원 : 저는 프리랜서로 일러스트와 디자인 일을 하고 있었어요. 둘 다 넉넉하지는 않은, 궁핍한 프리랜서였어요. 그렇지만 시간은 더 많았어요. 그래도 “어떻게 돈을 벌어야 되지?” 이런 고민을 심각하게 하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냥 없이 살지, 뭐.’ 그런 기분이었는데, 그게 시간의 여유 덕분일까요? 관계의 풍성함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거기에서 오는 만족감이 훨씬 크니까 별 걱정이 없었던 건지. 틈틈이 일하고 틈틈이 여기 내려와서 손 보태고 이런 식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지냈어요.
그런데 그 즈음에 저는 뭔가 삶의 패턴을 좀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무렵이에요. 거주가 좀 불안했달까? 제가 살았던 데는 성북동의 되게 꼭대기 마을이었어요. 달동네 같은 곳인데, 환경으로 보면 아주 오래된 마을이고 거기가 더 농촌 같이 공동체 마을 같은 곳이었어요. 거기에서 한 10여 년 살았는데…….
호연 : 계약 기간이 다 되었고 재개발 이야기 때문에 더 이상 계속 살기가 어려웠어요.
혜원 : 그것도 그랬죠. 거기서도 2년 계약 기간 지나면 계속 옮겨 다녔어요. 그런데 그게 안 되게 된 거죠. 그래서 거주가 불안해졌달까요. 그래서 삶의 터전을 바꿔보면 어떨까? 둘이 그런 말을 하던 참이었어요. 꼭 농사를 짓겠다는 아니었지만, 농지 가까운 곳이 어떨까 싶었죠. 특히 호연 씨가 농사짓는 것에 굉장히 흥미를 느끼던 참이었고 생태 화장실이나 이런 데도 관심이 있었고요.
호연 : 그러던 차에 친구에게 소식을 들었어요. 부용리에 방이 하나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보러 갈까 싶었는데, 마침 또 약간 무리를 하면 전세도 가능했어요. 그러면 ‘그냥 한 번 가보자.’ 했던 거죠. 이주계획을 찬찬히 세웠던 건 아니고 약간의 충동과 뭔가 불안 같은 것이 다 섞여서 2018년도에 그냥 옮겨왔던 거예요.
Q. 다람쥐는 어떤 곳인가요?

혜원 : 가게를 생각할 때, ‘다람쥐’ 어때? 그랬어요. 전에 무슨 기사를 봤는데, 다람쥐가 워낙 잘 줍잖아요. 주워서 자기 먹을 것을 숲 여기저기에 보관해 둔대요. 근데 얘가 머리가 좋지는 않아서 그걸 잊어버린대요. 거기에서 싹이 나서 그것이 숲을 만드는 데 굉장히 큰 기여를 한대요. 그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다람쥐가 의도한 것은 아니고 어떻게 보면 조금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는데, 그게 너무 귀엽고 깜빡깜빡하는 게 우리 같기도 하고, 의도했든 안했든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요. 뭔가 크게 대의를 갖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지, 이것보다 그냥 자기도 모르게 한 어떤 일들이 씨앗을 자라게 할 수가 있다는 게 좋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다람쥐’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호연 : 혜원 씨는 성북동에서 살 때도 그래놀라나 잼이나 토마토를 말려서 만든 마리네이드 같은 건 꾸준히 해먹었었어요. 제게도 나눠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대충 먹었고 끼니를 별로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혜원 씨 작업실에 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작업량도 대단한데, 먹는 거며, 살림까지 잘 챙겨가면서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혜원 씨 작업실에서 처음 먹어본 것이 많아요. 잘 구운 빵에 리코타치즈하고 수제 잼이 나온다든지, 감자로 스프를 만든다든지, 양파로 스프를 만든다든지. 세상에! 양파를 어떻게 스프로 먹지? 싶었는데 먹어보고 깜짝깜짝 놀랐죠.
혜원 : 집에서 독립하고 작업실 겸 살림을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한 시나리오 작가가 고독사를 한 사건이 있었어요. 뉴스로도 굉장히 많이 나왔었어요. 그게 저는 무척 충격적이었어요. 삼청동 정독도서관 매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조금만 아파도 혼자 살면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보리차랑 리코타치즈 같은 좋아하는 몇 가지를 정해놓고 일상 루틴처럼 보리차가 떨어지면 새로 끓이고 치즈가 떨어지면 또 만들기를 이어가자고 생각했던 거예요. 말하자면 내 몸을 움직여서 나를 먹이는 양식 같은 것을 계속 만드는 습관, 내 삶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습관을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놀라 같은 건 비상식량 같잖아요. 그런 걸 구비해야겠다는 마음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이곳을 왔다갔다 할 때, 시시장이라고 친구들이 만든 장터가 있었어요. 거기에 셀러로 참여해서 그냥 내가 만든 거 서너 개 봉투에 넣어서 판 게 처음이었어요. 잼, 그래놀라, 호연 씨가 작은 텃밭에서 수확한 방울토마토 같은 걸 건조해서 마리네이드 만들고요. 그런 걸 만들어서 몇 병씩 파는 게 처음이었어요. 처음 가게를 해보면 어떨까 했을 때, 처음 떠오른 것도 내가 익숙한 것들이었어요. 그런 것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잼, 그래놀라 정도 생각했는데, 지금은 늘어났어요. 소스도 만들고 쿠키도 다양하게 만들고요. 가게를 시작한 건 큰 결심이었지만 그 전에 아무것도 없다가 짠~ 해서 식료품점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제가 자주 만들어 먹었고 친구들한테 선물로 주기도 했었던 식품들로 먼저 시작을 한 거죠.
저는 이 가게를 시작한 후에는 거의 가게 일만 하고 있어요. 유랑농악단 친구들하고 만나기도 하고 농사지으시는 가톨릭 두물머리 분회에 참석하기도 하는데, 그걸 활동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이 다람쥐를 잘 운영하는 게 제 활동이에요. ‘다람쥐’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거요.
저희가 2019년에 이 가게를 열었는데, 처음에는 동네 분들도 많이 오셨으면 좋겠다, 주변에 농부님들이 계시니까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카페를 겸하고 있었어요. 영업신청을 할 때도 즉석판매 제조업하고 휴게음식점도 같이 신청을 했었고요. 그런데 코로나가 겹치면서 뭔가 애매해진 거예요. 그래서 가공품 만드는 데 더 집중을 하자고 생각했죠. 이제는 그냥 개인 작업장으로만 쓰죠. 아직 초반 계획을 다 접은 건 아닌데, 여력이 없어서요. 그러다보니 동네분들도 뭐가 있기는 한데, 뭐하는 곳인지 분명치가 않으니까 벌써 5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뭐하는 데냐고 묻기도 하시죠.
지금은 인스타그램으로 온라인 판매를 하거나, 마켓에 나가는 정도예요. 마르쉐를 주로 많이 나가요. 한 달에 한두 번은 나가고 있어요. 마르쉐에서 만나서 알게 된 분들이 온라인으로 주문하시기도 하고요.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연결이 확장되고 있다는 기분은 들어요. 정확히 가늠은 할 수 없지만 처음 시작할 때보다 아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반겨주시는 분도 늘어나는 거 보면 체감이 좀 되어서 5년째 된 작년부터는 다람쥐를 찾아서 오시는 분도 생겼고요. 그래서 체감하기로는 우리가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구나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Q. 이 지역에서 사시면서 느낀 장단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호연 : 이 지역에는 가톨릭농민회 두물머리 분회가 있어요. 이 모임은 4대강 반대했던 농부 4명이랑 거기에 연대했던 사람들이 지역으로 이사를 오면서 만들어진 거예요. 벌써 10년 이상 되었어요. 전체 이름은 가톨릭농민회 수원교구 두물머리분회예요. 가톨릭농민회라는 전국 단위 농민회가 있고 거기 소속의 지역 분회예요. 여기에 이사 와서 가입 제안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같이 하게 되었어요. 농사도 짓게 되었고요. 사실 ‘다람쥐’도 할까말까 고민할 때, 그 농부들이 계속 부추기고 격려해 주셨어요. 이분들과 함께하는 것은 한 마을의 이웃이면서 같이 투쟁해온 더 각별한 관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분들과 이웃이 되고 같은 농민회 소속이 되니까 거기에서 소속감이나 이런 친밀함을 느끼는 것이 굉장히 좋았어요. 안정감이 들고 뭘 해도 “으샤!” 이렇게 응원해 주고 지지받았어요. 덕분에 다람쥐도 가능했고 농사도 가능했죠.
혜원 : 가장 큰 장점이 확 덮치듯이 오는 관계가 아니고 내부에서 굉장히 세세히 조율되는 부분이 있다는 거예요. 나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이런 관계에서 나름대로 반응할 수 있는 거니까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관계 형성이 돼요. 나는 서울에서 여기를 오려고 생각했을 때, 가장 걱정된 부분이 아는 사람이 다라는 거였어요. 좋은 사람들이고 좋아하는 분들인데 사회적 관계로 딱 연결됐을 때는 또 걱정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저는 워낙 약간 거리감을 있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인데, 이런 관계가 뭔가 내 삶을 완전히 바꿀 것 같다는 걱정이 좀 들었던 거죠. 딱 정해져 있는 공동체는 아니지만 아주 긴밀한 관계 속에 내가 들어가게 된다는 게 조금 무섭기도 하고 내가 과연 거리감을 조절할 수 있을까? 염려했던 거죠. 기우였지요.
호연 : 더구나 이분들이 똘똘 뭉쳐서 원주민과 따로 노는 게 아니라 마을분들과 굉장히 잘 섞여 있고 관계를 먼저 잘 풀어가고 있으세요. 그래서 우리가 그 관계 속에 들어갔을 때, 어색함 없이 금방 친밀해질 수 있었어요.
혜원 : 그래서 우리가 크게 덕을 본 거예요. 동네 분들은 ‘유기농들’ 같은 식으로 묶어서 가리키기도 하시고 밖에서는 그룹으로 이해하시는데 저희도 거기에 포함되는 거죠. 그렇게 묶인 그룹 안에 무척 많은 것이 들어있다고 느껴요. 원주민에게는 이주해서 5년, 10년 되어도 여전히 외부인이에요. 그런데 5년, 10년 먼저 와서 그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잘 해왔던 선배 이주민들 덕에, 그분들이 좋은 인상을 받고 있으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잘 모르지만 같은 부류겠거니 하시는 거죠.
동네에 오래 사시는 토박이 할머니들이 몇 분 계시는데, 그분들도 환영해 주세요. 동네 분들이랑 친해질 일도 별로 없는데, 메주 쑬 때, 할머니 댁에 가서 배우기도 하고 새해 같이 무슨 때면 인사도 가고 그냥 정류장에서 만나도 너무 반갑고 “어디 가냐?” 물어주시고요. 동네 분들이랑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오신 분들과 관계가 그렇기 때문에 저희까지 계속 좋게 연결되는 거예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가장 아쉬운 점은 교통이죠. 버스 2~3대로 다니나 봐요. 7시 반에 시작해서 한 11시까지는 1시간마다 1대씩 있고 그다음부터는 두세 시간마다 한 대씩 있어요. 저희가 차가 없어서 교통이 좀 힘들어요. 막차가 8시 반이라 늦은 시간에는 택시를 타야 해요. 서울에서는 택시를 타본 적이 거의 없는데, 여기서는 정말 택시를 자주 타서 택시 기사님들이 열한 분 계시는데, 저희가 타면 행선지도 묻지 않고 집으로 데려다 주세요. 우리 집은 모두 알고 계시죠.
호연 : 몇몇 기사님들이랑은 무척 친해져서 농사 이야기도 하고요. 그분들 덕분에 사는 것 같아요.
Q. 사람들이 다람쥐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떨까요?

혜원 : 우선 여기 가까이 사는 동네 분들은 있는지 잘 모르시고요. 지인들에겐 소중한 아지트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호연 : 그래서 혜원 씨가 ‘다람쥐’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 거죠. 두물머리 분회나 뒷골밭 친구들이나 그 외에 두물머리 인연으로 4대강 반대 인연으로 맺어진 친구들이 다 살고 있거든요. 그 모임이나 관계들이 이 공간을 잘 이용하고 있어요. 그렇게 모임들이 이 공간을 잘 쓸 수 있도록 유지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거죠. 내년에 농사지을 벼도 다람쥐에 보관해요. 탈곡한 햅쌀도 여기에서 나눔할 거거든요. 갈무리 일을 다람쥐에서 많이 하죠.
혜원 : 보관하기 좋은 온도예요. 호박, 단호박 수확했을 때도 여기에 놓고 숙성시켰어요. (웃음) 가끔 그런 생각은 해요. 다람쥐가 지금은 피부 같아서 저의 직장이고 일터라 그냥 자연스럽지만 또 이게 없다고 생각하면 이제까지 모여왔던 활동 같은 것들은 또 어디서 했을까를 생각하게 되죠. 우리 정도의 관계가 있는 인간들에게는 이런 반 공적인 공간, 외부의 공간이 무척 필요해요. 내가 “너네 집으로 갈게.”가 아니라 “우리 거기로 가자.”라고 할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가 저희 생계를 유지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어느 일정 부분은 공유지처럼 쓸 수 있다는 점이, 우리가 다람쥐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큰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Q. 초하루에 장을 여신다고요?

혜원 : 초하루장은 요일 상관없이 홀수달 1일에 여는 거예요. 초하루장은 그닥 고생은 안 해요. 품이 아주 많이 들지는 않거든요.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오고 저희도 그러니까요. 아주 부담스럽게 하는 건 아니에요. 이번에는 준비 좀 더 많이 해서 풍성하게 하자고 하다가도 전날, 전전날 “어떡하지?” 싶어서 막~. 홍보도 아주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반반인 것 같아요. 같이 잘 아는 사람들끼리 편하게 우리끼리 하자. 이런 마음도 있는 반면에 커뮤니티로서 뭔가 활발하게 되어도 재미있을 텐데, 이런 생각도 없지는 않아요. 그러다보니 애매하게 열게 되었어요.
호연 : 우리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목적이면 준비를 더 잘했겠지만 사실 목적이 거기에 있다기보다는 이 지역에 이웃으로 사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리고 아까 말한 농민의 분들도 있고 근데 막상 이렇게 농사일로만 만난다거나 아니면은 만나는 장이 정해져 있다 보니까 장터에서 만나는 것뿐이잖아요. 그래서 일단 아는 관계들이 모여서 좀 시끌벅적 같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을 제일 먼저 생각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 관계만 모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요. 일단은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가지려고 만드는 장이고 그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장이기도 하죠.
혜원 : 맞아요. 그 정도인 것 같아요. 뭔가 막 여기저기 붙여서 “오세요! 오세요!”하기에는 장소가 좀 협소하고요.
호연 :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 좋고 안 와도 그날 우리는 나눌 얘기가 충분히 있으니까, 그렇게 한 다섯, 여섯만 모여도 밀린 이야기들이 있어요. 같이 뭐 이것저것 해볼까? 그런 할 얘기도 많고요. 두 달에 한 번 그냥 잔치한다고 생각하죠. 그렇게 관계에서 준비되는 장터다 보니까 공간을 운영하는 혜원 씨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지는 않은 거죠.
혜원 : 그리고 이건 저보다도 호연 씨가 굉장히 하고 싶어하는 건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왔다갔다 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풀씨방과후학교가 있잖아요. 가끔 만나는 풀씨 아이들이 있어요. 식료품점이니까 오가면 과자나 캬라멜도 주고 싶고요. 이런 부분을 어떻게 잘 연결할 수 있을까? 어린이들은 가격 할인을 해주거나, 무료로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동네분들이 후원을 해주실까? 또 그렇게 하려면 상시적으로 저희도 어린이들 먹일 것은 구비해 놓고 ‘이곳이 열려 있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들어오는 가게처럼 보여서 기운이 오히려 소진될 수도 있겠다 싶고요. 간판 안 만드는 핑계도 이제는 안 먹힐 때가 된 것 같고요. 생각이 좀 많아요.
호연 : 그런 것도 다 기우일 거예요.
Q. 실학박물관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실까요?
호연 : 실학박물관은 자세히는 몰라요. 위치 정도 아는 거죠. 아는 분이 프로그램 하신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있어요. 뭘 해보고 싶다고 말하기엔 실학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몰라요. 생활의 기술에는 관심이 많죠. 하지만 실학이 곧 생활의 기술은 아니잖아요. 실학을 공부해 본 적은 없어서 학문으로 궁금하긴 해요. 연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생활기술에 관심이 많고 친구들도 그런 생활과 관련된 기술자들이 많아요. 농사도 그렇고, 생활도구를 만드는 친구들도 많고요. 만약에 활동을 한다면, 제가 경험한 것, 제가 아는 생활기술을 나눈다면 나무로 생활재를 만든다든가.
혜원 : 호연 씨가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생활기술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호연 : 일단은 사람들에게 실학을 좀더 잘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연결할 수 있는 것이 생길 것 같아요.
혜원 : 저는 제가 뭔가를 하고 싶은 게 있다기보다는 그런 자료를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생활기술을 예로 든다면 1970년대, 1980년대에 담장에 시멘트로 모르타르 무늬 내는 미장기술? 그런 재능을 가진 분의 인터뷰를 볼 수 있다거나, 아니면 그런 농기구를 만드는 사람들의 인터뷰 같은 걸 찾아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지게를 만든다거나, 호미를 만든다거나. 지금은 그런 무늬가 있는 담장골목이 사라졌지만 그런 무늬내는 미술들, 어떻게든 아름답게 벽을 장식하고 싶었던 생활 장인들, 뭔가 장인이라고 인정받지 못했더라도 저는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분들의 인터뷰나 기록들이 좀 잘 연결되어 있으면 좋겠고 또 그런 것을 통해서 사람이 연결되면 좋겠어요. 요즘에 하는 생활기술하고 연결하는 중간 요소가 많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중간기술, 중간의 생활기술이 드러나는 작업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동화 속에 등장하는 곳 같은 식료품점 다람쥐의 두 주인은 다람쥐가 도토리, 알밤, 개암 열매 등 갖은 열매를 모아들이듯 갖가지 식재료를 거두어들여 썰고 말리고 절이며 여러 가지 맛있는 것을 만들고 있다. 맛있는 것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지사, 좋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다람쥐’의 특별하고도 다정한 행보가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2025 실학박물관 지역활동가 아카이브 <모종의 발견>
조선 후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하던 학자들을 실학자라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활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모종의 발견>은 지역 곳곳에서 싹트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찾아 숨겨진 가능성과 가치를 세상에 알립니다.
<ggc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