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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

[모종의 발견] ⑧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하는 선택, <농부시장> 박도희

2025 실학박물관 지역활동가 아카이브

타고난 본 모습을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농부들이 바로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생산한 농산물은 작고 볼품없고 수량도 적지만 그 뜻을 알리고 그 농산물이 제값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농부시장’의 박도희 님은 그 중 하나이다.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는 농부와 그 농산물의 유통에 깔린 박도희 님의 철학을 만나보자.



Q. 농부시장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저는 양평 양수리에서 두물뭍농부시장을 기획 총괄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소규모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가지고 나와 소비자와 만나는 장을 만드는 일을 해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를 넘어, 지역의 삶과 가치, 생명에 대한 태도를 나누는 문화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직거래장터’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비슷한데 저희는 ‘농부시장’이라 부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자리가 아니라, 농부의 이름과 그 노고, 그리고 농사에 담긴 철학을 함께 전하는 자리이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인 시장에서는 다른 곳에서 가져온 농산물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지만, 두물뭍농부시장은 농부가 직접 나와 자신의 손으로 키운 작물을 소개하고 이야기 나누는 곳입니다.



Q. 농부시장은 언제 어디에서 열리나요?



농부시장은 양수리에서 한 달에 한 번, 양평읍에서 한 달에 두 번 이렇게 두 곳에서 열려요. 두물뭍농부시장은 양수리 수풀로 생태공원 옆, 양수3리 공영주차장 옆에서 매달 첫째 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시장이 열립니다. 올해부터는 오전장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역의 농부들의 참여율을 높였고 농부들이 하루종일 시장에 발이 묶여 있지는 않아도 돼요.


여기에는 농부들이 직접 키운 제철 농산물은 물론이고, 건강한 식재료로 손수 만든 먹거리나 직접 만든 수공예품도 있어요. 시중에서 가져온 물건을 파는 곳은 아니고요, 전부 지역에서 나고, 지역 사람들이 만든 것들이에요. 그래서 장날이면 사러 오는 분들뿐만 아니라 구경하고 이야기 나누러 오는 사람들로 늘 북적여요. 예전 오일장처요. 또 하나는 양평읍 생활문화센터 앞마당, 예전 산림조합 건물이 있던 곳 앞에서 열려요. 이 시장은 ‘레코우리’라고 부르는데, 매달 둘째 주 토요일과 넷째 주 금요일, 이렇게 한 달에 두 번 열립니다. 한번은 주말, 한번은 평일에 열리는데, 딱 1시간만 열리는 반짝 시장이에요.


이 장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운영돼요. 예약제로 운영되는 픽업형 장터예요. 미리 주문을 예약 받고, 농부님들이 그 물량에 맞춰 농산물을 수확해서 오세요. 그래서 남거나 버려지는 농산물이 거의 없도록 만들어본 생산자중심의 농부시장이에요. 그래서 농부님들은 품을 덜 들이고, 손님들도 기다리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사 갈 수 있죠. “지역 사람들이 지역에서 나는 걸 지역에서 사 먹자!”가 취지예요. 양평에서 자란 농산물은 먼저 양평 사람들이 먹고, 남는 게 다른 지역으로 나가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시장은 단순히 사고파는 자리가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지역의 삶을 나누는 장터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Q. 농부시장의 장점과 단점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일이에요. 농부가 자신이 키운 작물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고, 소비자가 그 마음을 알고 사가는 과정 속에서 신뢰가 생기죠. 그런 만남 속에서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관계가 자라나요. 이게 농부시장의 가장 큰 힘이에요.


제일 큰 단점은 사실 ‘농산물을 판다’는 사실 그 자체에요. 따닥따닥 붙어사는 작은 땅덩어리에 슈퍼마켓이 곳곳에 있고 게다가 이쪽 지역에는 두레생협, 한살림 같은 친환경유기농 네트워크까지 다 있잖아요. 그런데 농부시장까지 열리면 여러 면에서 겹쳐진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유통업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은 거지만 결국 소비자도 겹치고 뭔가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농부시장은 꼭 필요하지만 이곳 소비자들이 다들 텃밭도 있고해서 농산물 자체만으로는 관심이 적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농부시장이 한 달에 한 번밖에 안 열려서 필요할 때 살 수 없고, 시장이 열리는 날과 시기가 맞지 않은 채소들은 만나기가 힘들기도 해요. 하지만 더 자주 열기도 힘들고 여러 한계들이 혼재되어 있어요.


물론 여기 농부시장이 열리면 정말 시중에서 못보던 맛난 먹거리들을 만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자소엽’ 기름이 나왔는데, 저도 정말 처음 맛보는 것이었어요. 또 씨앗이 가득 박힌 해바라기를 사서 씨앗을 하나씩 빼서 까먹어 볼 수도 있는데, 이것은 해바라기를 기르지 않는 이상 이런 것을 만날 수 없잖아요.


동아박 자체도 처음 봤지만 맛이 엄청 궁금한데, 크기가 엄청나서 식구가 적은 집들은 이것을 통으로 살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걸로 만든 깍두기나 물김치를 먹을 만큼 살 수 있어요. 전에는 누룩 간장, 누룩 된장도 나왔는데, 간장이 까맣지 않고 투명하고 하얀색이에요. 된장에는 밥풀이 있고요. 움파가 겨울 추위를 난 파, 월동한 파라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월동한 파를 부르는 말이 따로 있었던 거예요. 쌀로 만든 슈톨렌을 사 먹을 수도 있고요. 이런 것이 모두 문화와 연결되어 있어요. 특이한 것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장점이고 새로운 식문화를 접하게 되고 삶의 지혜도 느낄 수 있어요. 이런 것이 저는 정말 재미있고 보람있어요.



Q. 그런 보람을 농부시장에서 일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매번 농부님들을 뵐 때마다 작은 대화 속에서부터 주위의 생명을 대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느껴요. 내 이웃의 범위가 내 주변 내 가족이 아닌 우리가 연결되어있는 이 지구, 생명 전체였어요. 그 넓은 마음,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가 기본 밑바탕에 깊이 깔려있다는 것을 일상의 대화 속에서 매번 느끼며 저를 돌아보고 반성합니다. 우리가 현 시대를 살면서 잃어버린 것 같은 그 마음이요.


그리고 농부시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함, 다양성이 제가 농부시장에 머무는 동력인 것도 같아요. 농부시장이 아니라면 그런 재미있고 다양한 것을 어떻게 사 먹고 접할 수 있었겠어요. 여기에서 일하면 그런 기회가 정말 많으니까요. 전에는 음식을 다루었었기 때문에 그런 재료들이 정말 궁금하고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제가 감동받은 ‘둘러앉은 밥상’이라는 쇼핑몰이 있어요. 그 쇼핑몰은 이런 농작물을 어떻게 길렀는지에 대해서, 농작물을 물건으로 보지 않고 다른 시각으로 농작물에 대한 설명을 써놓았었어요. 그런 것을 보면서 농작물을 기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중요성과 가치를 보는 기준이 달라졌어요. 그 덕분에 슬로푸드 회원이 되었고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걸 느끼게 되었어요. 그 덕분에 저의 관심이 농부에서 농부시장으로까지 연결되어 여기서 일하게까지 되었네요.



Q. 농부시장에 참여하는 농부님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농부시장을 구성하는 농부님들 자체가 보통 분들이 아니에요. 다들 개인의 이익과 편리함만 추구하는데에 반해,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거나 세상을 아름답게 지키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면서 까지 그 고통을 견디면서 사는 독립투사분들 같아요. 그것은 다 각자 마음속의 신념과 철학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 농부님들은 유행을 따르고 돈이 되는 작물을 기르는 대농들이 아닌, 대부분 다품종 소량 생산하며 땅을 사랑하시는 분들이예요. 그런데 어디에 납품 같은 걸 하려면 일단 한 작물당 물량이 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이 생산한 것은 양이 너무 적어요. 게다가 이분들은 모두 농사가 삶과 생계와 신념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렇게 기른 농산물을 농부시장에 가지고 오셨는데 운영진의 입장에서는 안 팔리고 다 못 팔면 마음도 아프고 걱정도 되죠. 그래서 얼마간의 사명감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분들 농산물을 먹는 사람들이 없다면 아마 땅을 팔아버리거나 다시 땅을 빌리지 않게 될 거예요. 땅 주인들은 농사를 안 짓는 사람들도 있어서 농사지을 사람이 없으면 대지로 바꾸던지 파는 게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한 명의 농부가 농부로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버는 것, 농부를 정말 포기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게 중요해요. 농부시장 법인명이 ‘자연으로 농지보존’이잖아요. 농산물을 직접사는 것! 그래서 이 땅의 농부가 농부로 살 수 있게 하는 게 농지를 보존하는 출발점이죠.




Q. 농부시장이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주체적인 꿈과 희망을 갖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네요.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주요국가 중에 최하위라잖아요. 이 정도면 우리가 들고 일어나도 옛날에 일어났어야 하는데, 다들 별로 관심이 없죠. 식량자급은 국가 안보와도 연결되어 있는 건데,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으니까 좀 안타깝고 염려되고 그렇죠. 농부들이 이제 다 힘이 빠져 버린 것 같아요. 희망 없이 겨우겨우 버티고만 있는 느낌이에요. 농사지으면서 부귀영화 누리고 싶다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영화는 바라지도 않으니 그냥 이 정도만 하고 살 수 있게 해줘.’ 이런 상황인데, 그것조차 쉽지 않아요. 점점 땅을 반납해야 하고, 농부를 그만둬야 하고, 농사를 짓는 것이 점점 더 마이너스고 오히려 굶어죽게 만드는 길처럼 보이고요. 더 이상 농부들이 “으쌰으쌰”해서 무엇인가 해보자는 희망과 꿈이 더 이상 나오기가 힘든 상황이에요.


그래서 농부시장에서조차 농부들이 주체라기보다는 장사꾼이 될 수밖에 없어요. 빨리빨리 팔아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팔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농부시장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농부시장에 사람들이 많이 오게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홍보며 마케팅에 돈을 써야 하고 그러면 그 비용은 농부들한테 갈 수가 없죠. 그러니까 뭔가 악순환 같아요. 본질은 농부인데, 본질이 아닌 것에 신경을 쓰고 비용을 써서 농부는 어쩐지 들러리가 되는 것 같고요. 농부시장에서 농부들이 파는 김치 만원어치는 비싸다고 여겨지고 수공예 부스의 가방 몇 만원짜리는 싸다고 여겨져요. 결국 잘 팔리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것! 게다가 농부님들이 주체가 되어서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고 한편으로는 농부님들에게 주체성이나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미안해서 바라지도 못하고 힘이 있어도 ‘됐다, 그냥 쉴란다.’ 이런 느낌이라 아쉽고 그러다보니 또 점점 더 가라앉는 느낌이고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Q. 그래도 계속 버티기를 제안하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실학박물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그래도 ‘실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방향이 있잖아요. ‘실학’을 매개로 해서 우리가 정형화된 틀에 갇혀서 계속 비슷하게 사는데 좀 다르게 접근해 보면 좋겠어요. 시작이라면 기본을 알아가는 것이 어떨까요? 자기를 조금 더 사랑하는 일을 하자고 해도 좋고요.


예를 들면 감자를 산다고 해보죠. 3천 원이라도 비싸다, 2천 원이라도 비싸다, 천 원이라도 비싸다고 하죠. 맨날 비싸다고 해요. 먹거리를 보는 이런 시각이 더 넓어졌으면 좋겠고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유기농으로 키운 농부님들의 노고가 담긴 감자는 대량 생산한 감자와 분명히 가격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가격을 다르게 매길 수가 있잖아요.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같은 가격을 매기고 먹는 사람도 모르니까 그냥 막 먹지요. 하지만 알면 같은 감자, 같은 숫자로만 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오죽하면 유기농이 써서 사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예요.


게다가 그 안다는 것도 보통은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의외로 요리를 무척 어렵게 생각해요. 먹던 것만 먹고, 만들던 것만 만들고, 모르는 건 안 사죠. 사실 혀도 감각이어서 키우면 맛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맛을 모르면 100만 원짜리 와인도 다 똑같고 먹는 의미가 없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와인을 배우러 가고 비싼 와인도 여러명이 같이 사서 조금씩 먹어보기도 하고요.


우리가 진짜 농산물의 맛을 알기 위해서 와인 맛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처럼 해보면 어떻겠어요? 감자가 10가지가 있으면 10가지 맛이 다 다를 텐데, ‘아무리 먹어봐도 다 똑같아.’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잖아요. 하긴 와인은 맛을 알아가면 재미도 있고 내가 더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 감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래도 먹어보는 재미는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 맛을 구별하는 클럽을 한다든지, 뭔가 재미난 걸 하면 어떨까요?


쉽게 일상에서 계란 후라이를 한다고 해봐요. 프라이팬에 기름 넣고 달걀 깨는 단순한 활동도 아주 다양하게 할 수가 있어요. 물이나 무엇을 첨가하지 않고도 정말 단순히 온도만 가지고도 아주 다양한 다른 계란 후라이를 만들 수 있어요.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쉬운 것에서 시작해서 다양하게 재미있게 실험해 보고 먹어보고 이야기하고 탐구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요약하자면 미각 탐험활동이랄까, 조리 탐험활동이랄까, 이런 것도 해보고 싶어요.


먹는 것은 생존 기술이잖아요. 나는 누구나 기본적인 것은 다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계란 후라이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결국 불을 써서 더 섭취하기 쉽도록 요리 기술이 발전한 건데, 우리는 불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물성의 변화를 정확히 관찰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 기본적인 것을 알기 위해서 실험을 해보는 자리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불 이외에도 우리 음식에서 또 기본적인 것이 염장하고 당장인데, 소금이나 설탕을 쳐서 오래 보관하는 거죠. 이 근본 원리만 이해해도 정말 식재료를 대하는 태도가 바뀔 거예요. 우리가 농부시장에서 식재료를 사지 않는 이유는 다 못 먹고 남으면 썩어서 버리게 되니까 그런 거죠. 음식을 버리는 건 다른 물건을 제대로 못 쓰고 버리는 것보다 더 크게 가책을 느끼니까요. 그래서 그때그때 먹을 양만큼만 조금 사거나 아예 다 만들어진 걸 사 먹는다는 결정을 하게 되지요. 그러다보니 점점 요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져서 전부 사 먹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염장과 당장을 이해하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면 음식을 다루는 관점이 바뀌어요. 예를 들어 무를 먹었는데, 남았어요. 앞으로 3일 동안 집에 없을 건데, 다녀오면 남은 무가 다 썩을 텐데 걱정하고 후회하겠죠. 그렇지만 남은 무는 그냥 썰어서 김칫국물에만 넣어놔도 돼요. 음료수 만드는 것도 간단하죠. 먹다 남은 과일이 있어요. 잘라서 설탕과 물을 넣고 따뜻한 곳에 두어요. 그러면 과일이 발효되면서 가스가 나와요. 잘 봉해서 시원하게 냉장고에 넣어놔요. 그다음에 열어서 먹으면 그게 천연 탄산수에요.


저는 생존 기술이 이런 것 같아요. 우리가 라면 끓일 때, 물의 양을 저울에 재지 않듯이 이 정도는 그냥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빵 같은 것도 사실 엄청 쉽게 만들 수 있는데, 우리가 원하는 그 텍스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어렵고 그게 기술이라 사 먹을 뿐이죠. 내 생각에는 아이들이 이런 기본을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이런 기본이 없어질수록 농부시장은 안 될 수밖에 없겠죠.


코로나 때 얘기예요. 친환경 농부님한테 직접 들은 얘기인데,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움직이지를 않으니까 오히려 생태계가 살아났잖아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자기의 면역력을 키우는 게 우선될 줄 알았대요. 그래서 이후로 유기농 농산물 같은 것에 관심이 생기고 붐이 일어날 줄 알았대요. 그런데 코로나가 지나고 잠잠해지니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더욱 약에 방역에 살균에만 더 신경을 쓰는 삶이 되어버렸죠.


유기농에 대한 인식이나 면역력을 키우거나 이런 측면에 주목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약이나 주사 같은 것을 바라는 방향으로 가더래요. 병균을 없애는 게 먼저가 아니라 병균을 이기는 내 몸을 만드는 게 먼저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생각의 구조가 이미 고착되어 있고 그 시각을 돌리는 것, 의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인 거죠. 이 시대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내면을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시대가 아니라 계속 눈이 바깥으로 가는 시대이니까요.


다른 방향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여도 뭔가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우리가 바꾸지 못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느냐? 그건 아니죠. 그래도 우리가 농지를 보존하고 자연 생태계와 인간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농부시장을 열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히고 어떤 방식을 뒤집었고 난리를 치고 뭐가 잘 되지 않더라도요.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말도 있지만 일단 심은 다음에 생각하자는 거예요. 사막이라, 잘되지 않을 것 같아서 안 심으면 나중에는 심는 방법도 잊어버리고 말 거예요. 그러면 뭔가 준비가 되고 기회가 와도 아무것도 못해요.


그냥 지금, 사람들이 조금 더 자기를 사랑하는 자기다운 일을 하며 삶을 즐기면 좋겠어요.




** 박도희 두물뭍농부시장 운영자는 올해 실학박물관과 함께 실·실·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장터에서 판매되지 못한 농산물을 장터가 마치는 점심시간에 함께 요리해 나누어 먹는 기획이다. 농산물을 장터 안에서 최대한 재미있게 또 의미 있게 활용하는 방법은 계속 실험될 것이다.







2025 실학박물관 지역활동가 아카이브 <모종의 발견>

조선 후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하던 학자들을 실학자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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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의 발견>은 지역 곳곳에서 싹트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찾아 숨겨진 가능성과 가치를 세상에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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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은 실학 및 실학과 관련된 유·무형의 자료와 정보를 수집·보존·연구·교류·전시하며 지역 주민에게 교육과 정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다목적 차원의 문화복합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건립한 국내 유일의 실학관련 박물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