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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웃음과 애도

문학-현대-산문 분야 『황제를 위하여』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황제를 위하여』 

이문열 지음, 민음사, 2001









웃음과 애도


김미정 - 문학평론가






이문열의 소설은 한국의 한 세대가 읽어온 독서 목록이나 경험과 공명하는 것이 많다. 사람들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읽으며 헤르만 헤세의 청춘과 성장의 이야기를 떠올리거나, 『영웅시대』의 장중한 변론 장면에서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렸다. 또한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가 고향 입구의 조그만 바위 풍경에서 시작할 때 『롤랑의 노래』 혹은 토마스 울프를 오버랩하기도 했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가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동명 작품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 갑론을박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황제를 위하여』는 어떤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가는 1980년 『황제를 위하여』를 연재하기 시작할 때 〈문예중앙〉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한때 우리에게 익숙했고 거의 일상으로 쓰였을 생각과 말들이 이제 점점 대하기 힘들고 잊혀져가는데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이어 작가는 이렇게도 덧붙였다. “그 모든 것들 ­과학과 합리주의, 갖가지 종교적 이념, 그리고 금세기를 얼룩지게 한 몇몇 정치사상 등등­ 에 이제는 거의 아무도 그 유용성이나 정당함을 의심하려 들지 않는 것까지도 순전히 동양적인 논리로 지워 보려 애썼다.”


이렇게 작가의 의도만 읽으면 이 책이 복고적이고 비장하고 심지어 계몽적인 소설일 것만 같다. 하지만 의외로 이 소설은, “칭송의 대상이 본의아니게 우스꽝스러워지는 것”과 관련된 웃음, 해학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은 이 소설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었다. 그리고 소설이 해외에 번역되었을 때 그쪽의 찬사 역시 『돈키호테』 관련 수사와 함께 회자되었다. 가령, 프랑스 번역 당시 이 소설은 “세르반테스의 유명한 걸작에 대한 현대적 응답” “아시아의 돈키호테” “메시아주의를 향한 한국적 갈망” 같은 말로 소개되었다.


그렇다면 『황제를 위하여』는 무언가 복잡한 소설이다. 스타일과 형식은 먼 옛날 복벽주의의 정서를 지향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실패가 예정되어있지만, 변화한 시대라는 거대한 바위를 향해 계란을 던진다. 분명 그 무모함은 희극적이다. 그러므로 『황제를 위하여』와 『돈키호테』를 나란히 읽는 것은 자연스럽다.


『황제를 위하여』는 우선 ‘읽는 재미’로 가득 찬 소설이다. 하지만 이 재미는 단순히 인물의 희화화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상황마다 벌어지는 모순이 우리를 웃게 한다. 이 재미와 웃음의 중개자는 ‘서술자’다. 서술자는 1인칭의 시선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근대 소설에서 흔히 보아온 그 서술자는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이 그저 ‘구연자’임을 강조했다. 입담 좋고 넉살 좋으며 때로는 의뭉스러운 만담가를 떠올려도 좋다. 이 서술자는 오늘날 용어를 빌려 ‘믿을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황제를 위하여』의 서술자는 그 말을 거부할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고집스럽게 ‘구연자’ ‘이야기꾼’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믿을 수 없는 화자’라고 부르거나, 소설 속 주인공을 ‘돈키호테’에 비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런 말과 사고야말로 “동양적 논리”로써 지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서술자는, 이문열이 각별히 여겼던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에서의 서술자를 강하게 환기시키기도 한다. 『에밀리에게 장미를』은 몰락한 미국 남부의 가치를 에밀리라는 인물을 통해 형상화하고자 했던 소설이다. 이 소설의 서술자는, 그녀를 둘러싸고 수군거리는 ‘우리(we)’다. 그 ‘우리’는, 에밀리의 삶과 죽음의 쓸쓸한 증인이며, 몰락하는 가치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과 경외심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다. 『황제를 위하여』의 능청스러운 서술자에게도 바로 이 ‘우리’의 정서가 스며있다. 주인공(황제)를 향한 서술자의 애정과 경외심과 연민을 읽을 때 『황제를 위하여』는 『돈키호테』와 『에밀리에게 장미를』 모두와 상통한다. 그렇다면 대체 『황제를 위하여』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런 복잡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잠시 『돈키호테』를 분석한 문예 이론가 G.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한 말을 떠올려본다. 그에 따르면 세르반테스의 시대는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위대한 신비주의가 마지막으로 꽃을 피웠던” 시대이자 “사멸해 가고 있는 종교를 그 내부로부터 재생시키려고 광적인 시도를 하던” 시대였다. 즉, 정색하고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이전 시대에 의미 있던 가치들이 다른 시대의 가치로 대체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신기루일지언정 다시 움켜쥐려 한다. 그리하여 몰락하지만 위대했던 중세기사의 가치는, 돌진하는 풍차 앞에서 시대착오적 광인의 믿음으로 전락한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독자는 그 무모한 시도가 무엇에 대한 것인지 알아차린다. 독자는 우선은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의 끝에는 종내 눈물을 찔끔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렇다면 이 세 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바가 그려진다. 『황제를 위하여』는, 작가가 ‘동양적인 것’이라고 했던 근대 이전의 가치들이 더는 유효하지 않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 가는 시대를 살아간 주인공의 일대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서술자는 그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조망하고 있다. 작가 이문열은 동/서양의 대립적 의식에서 이 소설을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주인공과 서술자의 조합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그런 대립이 무의미해지는 경험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만큼 우리의 세계는 이전의 이항대립적 가치들이 잘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인지 모른다. 혹은, 한 시대, 역사, 삶, 가치들이 ‘명/멸(明/滅)’하는 것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한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즉, 『황제를 위하여』는 우선은 웃음과 해학의 소설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라진 것 앞에서 묵념하는 애도와 추모의 소설이다. 불가능을 알면서 추구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웃음이 발생한다. 이 웃음은 대상에 대한 경외심이, 바깥의 압도적인 상황 속에서 불가능해지는 것을 목격할 때 발생하는 웃음이다. 상황의 아이러니에 독자도 함께 연루된다. 이것은 연민과 그리움을 담은 웃음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질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경외심과 연민의 감정으로 그리워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그 감정의 복잡성은 어떻게, 무엇으로 인해 경험될 수 있을까. 『황제를 위하여』의 서술자 세대가 누렸던 정서적, 지적 경험은 지금 우리 시대에 무엇이 되어 있는 것일까.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난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질문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돈키호테』 (전2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트라 지음, 안영옥 옮김, 열린책들, 2014


「에밀리에게 장미를」

윌리엄 포크너 지음, 한기욱 엮음,(『필경사 바틀비』에 수록), 창비, 2010


『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문학동네, 2014





김미정 - 문학평론가



2004년 문학동네에서 평론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문학3」 기획위원으로 일하며, 대학에서 학생들과 배움을 주고받고 있다. 『군도의 역사사회학』 외 여러 권의 번역서가 있고, 『문학을 부수는 문학』외 여러 권의 공저가 있다. 근현대 한국의 교양, 문학의 계보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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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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