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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간다

사회 분야 『한국의 정체성』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정체성』

석산 지음, 책세상, 2008







정체성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간다


조태성 - 한국일보 기자




최근 한 일간지에 실린 김영민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가 신문 좀 챙겨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추석 때 만난 가족, 친지들이 성적, 취직, 결혼, 출산 등을 둘러싼 질문 공세를 이어갈 때 ‘성적이란 무엇인가’ ‘취직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 ‘출산이란 무엇인가’라고 능청스럽게 되물어보라는 주문이었다. 말하자면 형이상학적 반문이 너희를 구원하리라는 얘기였다. 칼럼의 인기 덕에 ‘~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난데없는 유행이 되기도 했다.


거꾸로 되물어보는 행위는 김영민 교수 스스로의 설명처럼 “사상 훈련에 좋은” 방법이다. 정체를 되묻는다는 것은, 마땅히 그러한 것으로만 인식했던 것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반문은 김 교수의 어법에서 보듯 약자의 말이기도 하다. ‘한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꺼내 든다면, 이 문제를 꽤 심각하게 거론하고, 동시에 이런 종류의 책이 의미 있는 책으로 통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약자라는 의미다. 간단한 원리다. 전교 1등은 전교 10위권 아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반면, 전교 50위쯤 하는 아이들은 전교 10위권 아이들, 그리고 그들과 나의 관계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서 있는 곳이 곧 시야다.


2000년 짧은 문고판 책 『한국의 정체성』에 이어 무려 10여 년 지난 뒤 써낸 속편 『탁석산의 한국의 정체성2』은 이 묘한 심리를 홀랑 까발린다는 점에서 시원한 책이다. 1권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파고든다면, 2권은 우리가 아닌 외국이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지를 추적한다.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출발선은 여기다. “강대국이면서 문화적 선진국이라면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별로 없을 것이다. 모든 문화를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으므로 자기화된 모든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약소국이다. 또한 문화적으로 후진국이다. 약소국이면서 문화적으로 후진국인 우리가 어떻게 더 강대하고 문화적으로 우월한 타국과의 교류 내지 타국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반문이 약자의 자기방어 수단임을 일러준 김 교수의 말처럼, 탁석산 또한 우리가 “약소국이며 문화적 후진국”이라서 한국의 정체성 문제를 자꾸만 되묻게 된다고 못 박고 시작한다. 우린 오랫동안 중국, 잠시 동안 일본, 그리고 지금 현재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는 변방 국가일 뿐이다. 중국만 졸졸 따라다닌 조선 사대부들을 그렇게나 비웃지만, 지금 우린 미국 흉내 내지 못해 안달이다. 달라진 건 그때에는 중국이 선진국이고 미국은 오랑캐였고, 지금은 미국이 선진국이고 중국이 후진국이라는 점뿐이다. 그렇기에 ‘오래된 우리 자랑스러운 전통’이라 외치는 것은 대부분 열등감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탁석산이 보기에 정체성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있는 것 같은데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다소 성기더라도 어떤 울타리를 세워보자면 시원(始原)은 정체성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간단하게 말해 지금 현재 여기서 우리가 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곧 한국적인 것이다.


2018년의 시공간에서 이런 논의가 아주 새롭지는 않다. 1999년 임지현의 도발적인 책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를 시작으로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 등 탈민족주의 논의가 상당히 많이 소개된 상황에선 더 그렇다. 하지만 21세기 초입에 제기된 탁석산의 박력 넘치는 주장은 자못 놀라웠을 것 같다. 솔직히 여전히 유효한 얘기이기도 하다. 한국만의 고유한 그 무엇이 온 세계만방에 떨칠 것이라는, 열등감에서 발원된 이야기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1ㆍ2권에 걸쳐 도발적 주장은 즐비하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 발명은 곧 반문에 부딪힌다. 금속활자 발명이 중요한 건 지식의 대중화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금속활자는 그런 역할을 한 적이 없다. 더구나 금속활자를 잊어버린 뒤 우리는 일본의 활자를 오랫동안 써왔다. 우리의 금속활자 기술 자체가 대량 인쇄에 부적합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고려청자의 비취색이라면 동아시아를 홀린 놀라운 기술적, 예술적 성취라고들 알고 있다. 그런데 중국 기록을 보면 별달리 후한 평가를 내린 대목을 찾기 힘들다. 명나라에 그리 사대했건만 잘못 기록된 이성계 할아버지 이름 고치는 데만 200년이 걸렸다. 고고학 자료들을 통해 우리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공자 또한 우리가 아는 공자와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내보인다. 공자의 트레이드마크, 인과 예는 원래 공자 이전부터 널리 쓰인 개념이다.


역시 가장 독자들을 도발할 이야기는 일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본에 대한 ‘이율배반적 태도’다. 우리는 우리가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인 것은 우리 식으로 소화해낸 자주적인 것이라 생각하지만, 일본이 한국 것을 받아들인 것은 그저 한국 것을 감지덕지 받아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고로 우리는 중국에 감사할 필요가 없지만, 일본은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근대 서구문명은 일본이 걸러서 우리에게 전해줬다. 일본은 왜곡해서 전해줬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에 감사해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일본 문화를 무척이나 즐기고 좋아하는 것도 다름 아닌 한국이다.


탁석산은 철학자이기에 이런 얘기들의 진위를 따져 묻진 않는다. 현상적으로 드러난 이런 이야기들을 두고 내가 들여다보니 이런 점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따져보는 쪽에 선다. 솔직히 오늘날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각 분야에서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알게 모르게 다 하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이런 얘기가 익숙지 않은 것은, 이런 이야기가 큰 인기가 없어서다. 자긍심이 부족한, 열등감이 있는 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냉정한 사실이 아니라 판타지다.


사실 정체성이란 답이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근대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가장 널리 알려진 기록은 아마 이어령 선생의 1960년대 작품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일 것이다. 한국에 대해 별로 좋은 얘긴 없다. 그런데 2002년 40주년 판에서 긍정적 평가가 늘어난다. 김호기 연세대학교 교수의 지적처럼 ‘당파성’을 상징하던 윷놀이는 ‘신바람’으로 바뀐다. 아니, 진짜 바뀐 건 1960년대 한국과 2000년대 한국일 것이다. 서 있는 곳이 달라지니 윷놀이에 대한 평가도 뒤바뀐다. 고로 한국의 정체성이란, 지금 여기 우리가 서 있는 곳이자 바라보는 곳이다. 정체성은 이미 주어진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하는 모습일지 모르겠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성스러운 암소 신화』

D. N. 자 지음, 이광수 옮김, 푸른역사, 2004


『배흘림기둥의 고백』

서현 지음, 효형출판, 2012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강명관 지음, 소명출판, 2007






조태성 - 한국일보 기자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말 같지도 않은 핑계로 2016년부터 한국일보 문화부에서 출판팀장을 하고 있다. 팀장이지만 팀원은 없다. 페이퍼의 종말이 운위되는 디지털 시대의 한 단면이다. 조회수에 대한 압박과 영상물의 우위라는 디지털 쓰나미 앞에서 펜 한 자루를 쥔 채 그저 내일도 숨 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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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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