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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30호 |일상생활과 기록

비평의 자격과 문화예술교육


1. 프레드 이야기

  일상생활과 기록에 대해 말하기 위해, 한 편의 이야기로 시작해본다. 농부들이 떠난 늦가을 들판에 일단의 들쥐들이 나타났다. 들쥐들은 빠르게 들판을 장악해나가며 떨어져 있는 알곡과 열매와 볏짚을 주웠다. 알곡과 열매와 볏짚이 쌓여가는 즐거움으로 일하는 것이 힘든 줄도 몰랐다. 이런 상식적인 들쥐들 주변에 애매한 들쥐가 한 마리 있었다. 이 들쥐의 이름은 프레드이다. 프레드는 동료 들쥐들이 알곡과 열매와 볏짚을 모으고 있을 때 애매하게 시간을 보냈다. 볕이 좋은 바위에 앉아서 먼 산을 바라보았으며, 혼자 중얼중얼 하는 날들도 있었다. 새들에게 말을 건넸지만, 새들도 먹고 살기 바빠서인지 거들떠보지 않았다. 프레드가 보낸 관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프레드는 상대에게서 돌아오지 않는 관심에 대해, 좌절이 아닌 관찰을 선택했다. 동료들이 말했다. 프레드, 일 안하니? 진심으로 프레드를 걱정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프레드는 동료들의 걱정을 좌절시켰다. 아니야. 나도 일하고 있어. 지금 햇살을 모으고 있어. 추운 겨울은 잿빛이잖아. 그 다음 날에는 바람을 모은다고 했다. 겨울은 갇혀 지내는 날들이 많아서라는 것이었다.



  물론 하루 이틀은 그럴 수 있다. 일하기 싫을 때는, 때로 아무 일 하지 않고 노는 게 좋긴 하다. 그러나 먹고 사는 일에 이런 지속성이 생긴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을 염려한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동료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프레드, 그러다 정말 큰 일 나. 걱정이 되서 그래. 알곡과 열매와 볏짚 없이 겨울을 살아갈 수는 없어. 그건 너도 잘 아는 사실이야. 그만 놀고 얼른 일하자. 그러자 프레드가 연민의 눈빛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지금 시와 이야기를 모으는 게 참 즐거워. 누가 나를 좀 막아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지만, 그러나 이것을 멈추기가 상당히 어려워. 프레드는 동료들도 인정하지 않고 사회적 통념으로도 흔쾌하지 않은 것을, 들쥐로 살면서 해야 할 일이라며 고집을 부렸다. 프레드 말처럼 그것은 멈추기가 상당히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늦가을 들녘의 어느 자리에선가, 프레드는 햇살과 바람과 시와 이야기를 모았다.


  짧은 늦가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왔다. 그러나 걱정이 삶에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들쥐들은 따뜻한 볏짚이 있는 집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알곡으로 밥을 해먹고 열매도 먹으며 겨울을 보냈다. 처음에는 미련한 곰과 약아빠진 여우를 놀려대는 게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하루, 하루, 또 하루가 하찮은 걸음걸이로 느리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일상이 이상하게 지루해졌다. 지루함에는 이유가 없었다. 지루함은 단지 반복되었고 차이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프레드가 그들의 창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가 들리자 문이 열렸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그 사람이 새로운 말을 하고 새로운 정서적 체취를 풍기기 시작하면 낯선 이방인이 된다. 그러나 낯선 이방인의 등장은 환대의 자리를 만드는 법이다. 모처럼 화색이 도는 향연이 열렸다. 들쥐들은 알곡과 열매, 볏짚을 내놓았고 프레드는 햇살과 바람과 시와 이야기를 내놓았다. 프레드와 들쥐들은 환담을 나누며 먹을 것은 먹고 마실 것은 마셨으며 말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모여 앉은 곳은 이제 카페가 되었다. 서로가 동무되어 편안하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만남과 대화
  한국에서 공공아카이브가 시작된 것은 1999년에 공공기록관리법이 제정되면서부터이다. 이 법의 요지는 공공기관에서 생산되는 공공기록은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각급 공공기관은 공공아카이브(기록관)를 만들고 아키비스트(기록전문가)를 배치하기 시작해 지금은 많은 아키비스트가 공공아카이브에서 공공기록관리를 수행하고 있다. 아키비스트는 전문직 종사자로 분류되어 기록대학원을 졸업해야 자격이 인정된다. 이를 위해 전국의 20여 개 대학은 대학원에서 아키비스트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공공조직의 업무수행에서 발생하는 공공기록을 관리하는 것과 일상생활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고 갈등을 하고 사랑을 하는 시간을 기록한다는 것은 다를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공공아카이브의 범위에서 이런 의문을 풀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반면, 일상에 기반을 두고 아카이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기초로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⓵ “자기 생각을 기반으로 아카이브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사람들과 어울려 아카이브 활동을 할수록 따뜻한 응원의 시선이 생기고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좋다. 동네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아카이브 활동을 할수록 내 자신을 스스로 지지할 수 있게 된다.”(청주시 산남동 동네기록관 아카이브 활동가의 말, 2020.12.11)


  ⓶ “마을아카이브의 과정은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잘 모르는 사람을 기록이라는 매개를 통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신뢰감이 쌓여간다. 상대의 이야기에 대한 공감은 한 사람의 삶을 인정해주고 보듬어주는 과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 구술인터뷰를 하는 기록자들은 일선에서 지역주민들을 직접 만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기록활동을 통해 겪게 되는 내면의 변화는 세대간의 벽을 허물고 공동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사이다, 2020, 『의왕시 도룡마을 기록보고서』 중에서).


⓷ “우리는 홍동의 그녀들을 모시고 마을사람들과 한데 모여 같이 이야기 나누는 형식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갑니다. 허스토리에서 만난 그녀들은 여성으로 살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았지만 같은 마을에서 서로 손잡고 함께 응원하고 도와가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간다고 합니다. 저 역시도 허스토리에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마을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담는 아카이브 활동을 하는 것이 꿈을 꾸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홍성여농센터, 『그녀들의 홍동이야기 – 홍동허스토리』(2016~2019) 중에서).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일상에서 아카이브를 하는 것은 이야기를 듣는 일인 것 같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충남 홍성의 한 아카이브 활동가는 같은 마을에 사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기록하는 일에 매진한다. 그것이 그녀들의 삶을 지지하고 연대하며 사는 것이라 믿는 것이며, 그것이 아키비스트가 해야 할 일이 이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충북 청주시의 한 동네에서도 아카이브 활동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동네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야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카이브 활동과 연계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아카이브 활동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과 어울려 유대감을 형성하면서 같은 동네 사람으로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이 개발이 되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그 전에 살던 사람들은 달라진 풍경 앞에서 ‘그때 그 산이 정말 저기에 있었을까’ 하는 상념에 빠지게 된다. 최근 들어 일단의 아카이브 활동가들이 개발의 과정에도 참여하여 그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아카이브 활동의 요체가 그 마을에서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 만나서 대화하고, 그들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경향각지에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공공아카이브에서 공공기록관리에 종사하는 아키비스트가 하기 힘든, 새로운 계통의 아카이브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누구일까. 이들에게 이름이 필요하다면 프레드가 아닐까 한다. 경향각지에서 일단의 아카이브 활동가들이 프레드가 되어 일하고 있다.



3. 일상생활과 기록

  한 대학에서 ‘일상생활과 기록’이라는 과목명으로 아카이브 수업을 하고 있다. 교육에는 교사가 아는 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제대로 숙지했는지 점검하는 주류적 방식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학생들이 가진 것을 꺼내기 위한 노력으로 학생들에게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방법론도 있다. 프레드는 후자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고, 그래서 ‘일상생활과 기록’이라는 수업도 후자에 속한다. 기록교사인 프레드는 학생들에게 이 시간은 아키비스트가 되어서 활동하는 시간이며, 그 아키비스트의 이름은 프레드라고 말하면서, 각자의 일상생활 속으로 아카이브를 데려가 아카이브 활동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요지를 간단하게 말해보면 다음과 같다.


⓵ 시를 먼저 썼다. 강의 첫 날, 동무들(아카이브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은 시를 썼다.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각자의 삶 속에서 다시 쓰는 것이다. 그 옛날 기록을 시작했던 선구적인 고대 필경사들이나 중세 수도원에서 성서를 베껴 쓰던 필경사처럼, 동무들은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의 시를 필사하기 시작했다. 다만, 각자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쓰는 것이기에, 전체적인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각각 고유한 시들이 나왔다. 참 오랜만에 쓰는 시였다. 동무들은 좋은 시를 암송하고 거기에 감흥을 받아 창작시를 쓰던 시절로 돌아가서 즐겁게 시를 썼다. 시를 쓰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쓴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것, 교사가 정한 시 쓰기 규칙에 따라 쓰는 것이면, 누구나 10분이면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시’를 쓸 수 있다. 이것은 비단 10~20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들과 만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

  시를 다 쓴 다음에는 한 사람씩 앞에 나와 시를 낭독했다. 기록의 무대에 오른 동무들은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이 쓴 시를 읽어나갔다. 부연설명은 필요가 없었다. 단지 낭독이 있을 뿐이었다. 낭독에는 강렬한 힘이 있어서 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어떤 세계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할 일은 대화를 나눈 것이다. 한 사람의 낭독이 끝날 후에는 여러 명이 참여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낭독과 대화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한 편의 시가 등장할 때마다, 어떤 삶이 등장할 때마다, 긴장과 집중으로 강의실에는 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즐거웠다. 마치 이국으로 떠나는 국제공항에서 보딩을 할 때의 설렘에 집단으로 취하는 것 같았다. 프랑스 시인 랭보는 “20살까지 시를 썼다. 그 뒤론 그 시를 살았다”고 했다. 랭보를 따라, 프레드란 이름을 가진 동무들도 시를 쓰고, 낭독하고, 찬찬히 듣고, 대화하는 시간 속에서, 강의 첫 날 아키비스트가 되었다.


⓶ 그 다음은 누구를 기록할지를 정했다. 일상생활을 기록하는 일은, 자신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기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상을 같이 하는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를 선정해서 찬찬히 살펴보는 일이 시작되었다. 동무들은 자신의 삶에 깊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골랐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 언니, 오빠, 연인, 친구’가 많았다. 한편으로는 알바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고르는 경우도 있었다. 편의점 점주나 편의점 손님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기록방법론은 <관찰, 대화, 기록>이었다. 관찰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평소에 잘 아는 관계이긴 하지만 일단은 거리를 두면서 전혀 낯선 사람인 듯 대하는 것이다. 관찰을 시작하면 당연했던 것들에 의문이 들기 시작하고, 그런 의문은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진다.

  예를 든다. 엄마를 기록하는 동무들은 그 사람을 엄마이기보다는 ‘40~50대의 한 여성’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관찰해보면, 그녀는 엄마가 아닌 곳에서도 찬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연인을 고른 동무들은 상대를 ‘20대의 한 남성, 여성’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연인이 아닌 곳에서도 찬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를 기록하는 사람은 40~50대의 남성을 만나는 것이 일이었고, 언니를 기록하는 사람은 자기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어떤 젊은 여성을 만나는 일이었다.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그녀의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 대화를 하는 것, 직장에 찾아가 밥을 같이 먹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언니가 아닌 곳에서도 찬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⓷ 관찰하는 과정을 따라가 본다. 이제 20살, 대학을 진학해 해방감을 느껴야 할 나이에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은 억압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세상사에는 명암이 있다. 해방의 신입생이라면 엄마를 만날 시간이 별로 없었겠지만, 엄마를 장시간 관찰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코로나로 집안에 감금된 것이 오히려 행운이었다. 온종일 엄마를 주시하면서 기록의 렌즈 안으로 초대할 수 있었다.

  딸은 엄마를 ‘불순한 마음으로’ 주시하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 엄마의 움직임을 쫓았다. 어슴푸레한 새벽빛을 보며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고 우리를 깨웠다. 달그락거리는 정겨운 소리를 만들어내며 설거지를 끝냈고 여전히 남아있는 졸음에 잠시 눈을 붙였다. 정오가 넘어가자 점심 준비를 했다. 간단한 점심이었지만 준비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매일 청소할 것은 왜 그리 많은지. 해가 저물기 전에 또 다시 저녁밥 짓는 냄새가 퍼졌다. 이른 밤이 되어서야 엄마가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렇게 늦은 시각은 아니었지만 엄마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잔뜩 맺혀 있었다. 내가 늘 봐왔던 익숙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아닌 낯선 여자의 삶을 관찰해야 했다.”

    물론 엄마가 아닌 낯선 여자의 삶을 관찰하는 일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엄마를 엄마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마주하는 것은 꽤나 난감한 도전이었다. 지금까지 그러한 시도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까닭이다. 한번 정해진 사람의 이미지는 마치 커다란 바위와 같아서 그 형태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바람에 부딪치고 빗물에 적셔져야만 비로소 그 모양에 변화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처음 얼굴을 마주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늘 나의 엄마였다. 그렇기에 하루아침에 그녀에게서 엄마의 역할을 지워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것은 피사체에게서 그림자를 분리시키는 일과 다름없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렵기는 했지만 어려울수록 흥미가 생겼다. “나는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내야만 했다. 나는 그녀를 관찰하고자 한 것이지 그녀를 ‘엄마’라는 역할에 가둔 채 평가를 내리고자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어떤 사람을 엄마라고 부르는 것일까? 나는 지금까지 아무 의심도 없이 엄마라는 역할을 규정하며 살았다. 그녀를 ‘엄마’라는 역할 속에 가뒀고 결국 엄마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나를 사랑해주는 것도, 매일 음식을 만드는 것도, 밖에서 돌아온 나를 맞이해주는 것도 엄마이기에 당연하다는 생각이 어느새 자리 잡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엄마라는 역할을 규정지었기 때문에 엄마가 하는 모든 행동이 당연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그녀에게서 엄마의 역할을 완전히 분리시키지는 못 했지만 조금씩 낯선 누군가를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삶이 있고 나의 엄마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순간이다. 내가 아직 그녀와 한 몸이었던 바로 그 순간부터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나의 엄마라고 칭했다. 그렇기에 엄마와 딸이라는 그 애틋한 관계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른 무언가가 되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그녀를 기록하는 이번 활동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서서히 엄마라는 규정과 평가가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규정과 평가는 무엇일까? 히말라야 정상에 사는 토끼가 있는데, 그 토끼는 평지의 코끼리보다 자신이 크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평지에서 단 둘이 대면하면 자신이 코끼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히말라야(규정, 평가, 사회적 지위, 제도적 힘 등)에 올라 지내다보면, 자신이 누구인지 그 고유성을 망각하게 된다. 히말라야는 히말라야이고, 토끼는 토끼일 뿐이다. 그러나 히말라야의 크기가 자신의 크기인 양 착각하기 시작하면, 상대가 코끼리인데도 깔보고 무시하며 그 사람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다. 심지어 그것이 자신이 천부인권으로 누리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는 데까지 이른다. 인간이 닭과 돼지를 사육하며 그저 한낱 고기일 뿐이라며 먹어치우는 육식문화도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농부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겸손하게 대지에 발을 붙이고 작물을 기른다. 농부들은 벼에 대해, 감자에 대해 우월감을 갖진 않는다. 농부들은 소도 농사의 동반자로 여겨서 존중한다. 동물도 식물도 모두, 하나의 생명체로서 존중하며 기르고 돌보는 데 전념하는 것이 농부의 심성이다. 우리의 일상을 에워싼 규정과 평가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록하는 시간 동안 그것은, 히말라야 산 꼭대기에서 내려와 평지에서 엄마를 만나는 일이었다. 관찰을 통해 내릴 수 있었던 잠정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주어를 바꿀 수 있었다. 엄마와 딸의 대화에서는 딸이 주어가 되곤 한다. 밥은 먹고 다니니, 어디 아픈 데는 없니? 오늘은 왜 얼굴이 어두워? 이런 식이다. 엄마라고 내 앞에 있는 어떤 40대 여자는 과연, 밥은 먹고 다니는지, 오늘은 왜 얼굴이 어두운지 대화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 모녀지간의 대화에서 주어가 바뀌었다. “그녀는 왜 힘들어하면서도 매일같이 집안일을 하는 것일까, 왜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는데 우리를 챙겨주는 것일까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그녀’라는 주어를 ‘엄마’라고 바꾸면 쉽게 납득이 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주어로 하는 질문에서는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엄마라는 평가를 내렸을 때는 당연하게 느껴졌던 모든 것들이 평가를 지우니 그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딸은 엄마에게도 어떤 여자의 삶이 있었다는 자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문장의 주어를 바꾸는 것, 이야기의 주인공을 교체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엄마를 관찰하는 작업은 엄마를 주어로 만드는 것이고, 주어가 하는 말을 듣는 일이었다.


둘째, 엄마를 사랑할 수 있는 자유로운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번 기록 활동은 나의 일상에 가장 깊게 스며있는 사람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기에 처음에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었다. 그러나 그 기록의 과정에서 한 사람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그 사람의 인생을 알게 되었으며 그녀가 가진 사랑의 무게를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기록의 대상을 바라보고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 관찰의 시작은 관심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록의 대상에 대한 사랑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크기를 갖게 된다. 늘 마주하던 엄마에게서 낯선 그녀를 찾아냈고 나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녀에게 또 다시 스며드는 일. 그렇게 기록이 시작되고 사랑의 크기는 켜져 갔다. 나는 여전히 그녀를 엄마라는 호칭으로 부르겠지만 그것은 더 이상 일종의 평가는 아니다.” 딸은 엄마를 관찰하고, 같이 산책하고, ‘엄마가 아닌 그녀의 삶’을 주제로 삼아 대화를 나누면서 엄마의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동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4남매 중 첫째 딸로 태어난 한 40대 여자가 어떻게 나의 엄마가 되었는지, 나의 엄마로 사는 것이 왜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지, 그러면서도 행복한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엔딩은 나를 돌봐주는 엄마의 행복이었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식으로 엄마를 관찰하고 기록해서 무슨 이익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행복에 대해 알았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런 질문은 어디에서 올까. 모든 것을 교환할 수 있는 것으로 치환해서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에서 올 것 같다. 그것은 우선 알곡을 모아 하는 목소리이다. 알곡을 모은 다음에 하고 싶은 것을 해 하는 목소리이다. 이 목소리는 우리를 평생 동안 따라다닌다. 미시적 권력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이렇게 내면에서 작동하는 목소리가 권력의 원천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삶은 이런 질문에서만, 이런 목소리에서만 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랑의 관점은 정반대이다. 행복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더 이상은 없다. 부모와 자식이 나누는 대화의 종결점도 여기에서 그친다.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것 말고 더 무엇이 있을까. 이것을 넘어설 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일상을 구성하는 것 중에서 특히 관계에 주목했다.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자신이 맺고 있는 친밀하거나 중요한 사람을, 만나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가 종결점이다. 더 이상은 없다. 여기에서 기록하는 상대와 함께 행복과 자유를 맛보았다면 괜찮았던 시간이었고, 그렇지 못했다면 다음을 기약할 일이다. 기록의 세계에서 만나는 사람은 타인이 될 수 있다. 평소의 평가와 규정을 멀리할수록 타인은 가까이 다가온다. 아키비스트가 된다는 것은 자신에게 깊은 영향력을 주고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사람들을 타인으로 대하는 것이며, 그 사람을 관찰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보내는 시간을 향유하는 것이다.


4. 아키비스트의 시간

아키비스트는 전문적으로 기록을 관리하는 전문직을 말한다. 그러나 이 정의는 넓히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어, 농부는 누구인가? 농촌에 거주하면서 논농사, 밭농사를 짓는 사람이 통상적인 농부이다. 그렇긴 하지만, 도시에 거주하면서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직장인도 농부일 수 있고, 집의 베란다에서 상추를 심고 가꾸는 사람들도 농부일 수 있으며, 농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농부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농사에 관한 책을 찾아 읽는 사람도 농부일 수 있다. 농부들을 친구로 사귀면서 그들과 보내는 시간동안 대화하며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농부일 수 있지 않을까. 아키비스트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경향각지에서 아카이브 활동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아카이브를 드나들며 가치 있는 기록을 활용하는 사람들, 자신의 직업분야에 아카이브를 수용해서 자기 직업의 세계를 확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카이브를 삶으로 데려가 삶에서 자유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과 기회가 되면 아카이브 활동을 잠시라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아카이브를 소재로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학생들도 각자 그렇게 아키비스트가 되었다. 그래서 한 학기 동안 지낸 시간에 대해 ‘아키비스트의 시간’이라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시간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간단하게 예를 들어본다.

  ⓵ 딸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아키비스트로 살았던 동무는 자신이 지냈던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엄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그들의 성격에 대해 판단하려 하는 무의식적인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속마음을 완벽하게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대한 짐작해보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짐작은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게 부정확한 짐작을 통해 그 사람을 모두 알아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실수를 반복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타인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지 평가를 내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결국 타인을 이해하려면 평가가 아닌 관찰이 필요한 것이고 나는 이제라도 타인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직 서투른 부분도 있지만 나는 조금씩 타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그 곁을 흘러가기 시작했다. 타인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기록 활동을 통해 얻은 여러 수확 중 하나였다. 관찰과 기록의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을 계속해서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가와 관찰을 구분한다는 것의 의미를 잘 말해준 것 같다.

  ⓶ 유독 아빠를 좋아하는 딸은 아빠를 기록상대로 골랐다. 그런데 아빠를 단독으로 기록하기 보다는 아빠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기록하는 방식을 취했다. 아빠는 고등학교 다닐 때 밴드 활동을 했었다. 아빠가 자주 어울리며 친밀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밴드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들이었다. 딸은 이차저차 사정을 말하면서 40대 남성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20대 초반의 여성이 40대 남성들과 모여 앉아 이렇게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드문 시간이다. 아빠 친구들은 10대 고등학생 시절 만났다. 그 후 20대, 30대, 40대를 보내면서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 많은 시간을 그들은 함께 하면서 꽤 많은 얘기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을까?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딸은 아빠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아카이브라는 사회적이고 공적인 장치를 활용하는 이점을 살려서 이런 과감한 질문을 던졌다. 이 상황이 되자 다들 어색해졌다. 30년을 같이 시간을 지냈지만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주저했다. 그러나 시간을 끌 일이 아니었다. 친구의 딸이 지금 과제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학점이 엉망일 것이고, 학점이 엉망이 되면 취업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난감하다고 뒤로 빠질 수는 없다. 그랬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선의가 발동했던 것 같다. 한 사람씩 흉중을 열어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치매 걸린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가 제일 행복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모두 사라졌다.’ ‘아내랑 처음 만나던 날이 제일 행복했다. 저쪽에서 천사가 걸어오는 줄 알았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 거의 기억을 잃었다. 긴 회복시간을 거쳐 다행히 직장에 첫 출근을 한 날이 행복했다. 한 시간 전에 회사 건물에 도착해 커피 한 잔을 손에 들었을 때 참 행복했다.’ ‘첫째가 태어난 날이 제일 행복했다. 우주를 다 가졌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정확한 날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내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내 앞에서 환하게 웃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런 식으로 인생의 아름다웠던 순간이 기록의 세계 속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6명으로 구성된 아빠 친구들이었으나, 이후 이어진 설문조사 단계에서는 이들이 소개해준 사람들로 확장되어 30명이 되었다. 40대 남성들을 기록했던 아키비스트는 그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40대 남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들이 잊고 있던 그들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다시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들에게도 중요한 순간이 있었고 행복한 순간이 있었고 슬픈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우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나’를 잃어가고 있다. 내가 스스로 나의 시간을 가지기 힘들다면 누군가에 의해 잠깐이라도 나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30명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40대 남성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40대 남성들을 직업, 가족, 취미, 범죄(성폭행의 가해자) 등의 이유가 아니라, 이처럼 그들이 삶의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기록하려는 시도에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는 좋은 일도 불행한 일도 함께하는 사이일 것이다. 행복했던 순간은 그 사람이 애착을 갖고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순간이다. 웬만한 세상풍파에도 우정이 견고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각자의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5. 읍주의 기록향연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록하느냐가 중요하다. 누군가를 만나 그를 관찰하고 대화했던 시간을 정리하는 일이 남았다. 영화도 상영관에서 개봉되어 관객들이 보기 전에는 영화라 말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필름도 영화관에서 관객들을 만날 때 비로소 영화가 되기 때문이다. 동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기록한 것을 모두가 모인 곳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하면서 공유했다. 공유했던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⓵ 아키비스트의 좌충우돌. 체계적인 교육은 이론을 먼저 배운 후 실제를 익히는 순서이다. 그러나 일상은 꼭 그런 것 같지 않다. 사랑의 이론을 충분히 섭렵한 후 실제로서 연애를 하는 경우보다는, 연애의 쓰라림을 겪은 후 사랑이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경로가 더 일반적이지 않을까. 강의 첫 날 아키비스트가 되었기 때문에, 강의가 끝나는 날까지의 시간은 좌충우돌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강의계획서는 강의 첫 날 공개되는 것이 아니다. 강의계획서는 강의가 끝나는 날 보고서를 정리하면서 완성된다. 인생이 완성되는 순간은 묘비명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⓶ 연민, 환대, 우애의 세계. 기록이 정보적 가치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단견이다. 기록은 때로 고상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이번에는 연민으로 관찰하는 것, 기록하는 상대를 만나 보내는 시간을 환대로 채우는 법, 그리고 우애의 증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동무들은 스스럼없이 그렇게 했다. 그것은 연민, 환대, 우애가 어쩌면 포유류 시절부터 우리가 익혀온 본연의 가치이기 때문일 것 같다. ⓷ 사실적 정보. 환상적 리얼리즘에는 사실적 정보가 끼일 틈이 없겠지만, 기록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대한 것이다. 동무들은 사실적 정보도 충실하게 기록했다. ⓸ 기록방식. 전쟁이 나면 매뉴얼을 버리라. 이것이 필드 매뉴얼 1조이다. 대강의 지침을 갖고 기록현장으로 들어간 동무들은, 상황이 발생하자 그 안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기록방법을 개척했다. 관찰하기, 대화하기, 쓰기, 그리기, 찍기, 정리하기 등, 동무들은 인류의 일원으로서 인류가 개척한 다양한 기록방식 중에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록방법을 선택해서 수행했다. ⓹ 아키비스트의 시간. 아키비스트로서 어떤 시간을 살았는지 정리하는 일이 남았다. 동무들에게 이야기의 전통적인 플롯인 영웅 플롯에 따라 아키비스트로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기록해보자고 했다. 동무들은 영웅 플롯에 따라 자신이 아키비스트로 어떻게 성장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이렇게 했다.


  논의를 정리한다. 신영복 선생의 시서화 작품에 ‘남는 것을 덜어서 모자란 곳을 채우면 평화롭다’는 뜻의 浥注(읍주)가 있다. 프레드의 등장은 장소의 성격을 변화시켜 카페로 변신시켰다. 아카이브의 등장을 신호로 카페로 들어간 들쥐들은, 카페에서 기록향연을 즐겼다. 각자 남는 것을 덜어내 향연에 올리고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챙겨갔다. 알곡과 열매와 볏짚이 필요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바람과 햇살과 시와 이야기가 없는 인생으로 생을 마감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없을 것 같다. 꽃으로는 밥을 지어먹을 수 없다. 그러나 꽃과 밥이 함께 어울리는 읍주의 기록향연에서는 꽃으로도 밥을 지어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카이브가 일상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은 ‘읍주의 향연’을 반복하는 것일 것 같다(1장 프레드 이야기는 그림책 『프레드릭』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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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진 '지지봄봄' /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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